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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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움의 일가들

문광훈(충북대학교 독문학 교수)

서정주, 『자서전』(미당 서정주 전집 6-7권), 은행나무, 2016년.

좋은 책은 여러 가지로 회한을 남긴다. 그 회한들 가운데 찬찬히 음미되면서 지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오곤 한다. 이렇게 돌아온 회한은 자기에 대해 뭔가 적어달라고, 스스로 어떻게든 기억되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그래서 부득불 쓰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읽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선생(1915-2000)의 『자서전』(1977)1)도 그랬다.

또 하나. 이것은 나의 경우인데,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었을 때, 그래서 ‘좋다’는 느낌을 가질 때, 그것은 대체로 20-30% 혹은 30-40% 정도의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 그런데 그 인상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논평(review)해 보면, 그래서 읽은 것을 다시 읽으며 그 느낌을 자기 식으로 정리해보면, 그 책의 90% 이상이 남는 것 같다. 그만큼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자기언어로 기록해본다는 것은 예술의 경험에서 결정적이지 않나 여겨진다. ‘결정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작품의 어떤 정수(精髓)도 그렇게 경험한 자의 영육 속으로 체현되지 못 한다는 뜻에서다.

미당의 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에 대한 논평도 더러 해본 적이 있지만, 그의 시는 단편적으로 읽었을 뿐이다. 이번에 『자서전』을 천천히 읽어보니 여러 가지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다양한 색채와 뉘앙스를 가진 감정이었지만, 이 글에서는 한 가지만 쓰려 한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의 궤적들이다.
 이 그리움의 궤적을 『자서전』에 담긴 거의 모든 얘기들은 보여준다. 두 가지만 꼽아보자. 하나는 어린 시절 그의 집으로 찾아들던 어느 비구니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다. 먼저 비구니의 말을 들어보자.

“중노릇은 새로 그 일가친척의 수를 늘리는 일. 수풀 속 나무 꽃들, 기고 나는 새와 짐승, 날아다니는 구름 구름들까지도 새 일가친척을 삼어서 사는 일. 날 좋아하는 사람은 차라리 멀찍이 두고 해허는 희괭이를 가까이 하는 일. 눈에 안 보이는 안개 속이나 햇빛 속 공중에서 살다간 목숨들과 사귀어 만나는 일...

지난 일들 두고 생각 생각해 보면, 그래도 거기 제일 살아 나오는 건 시집간 뒷일들 아니라, 머리 땋은 처녀 때 일이야. 새벽 저녁 우물길에서 처녀 때 만나던 얼굴들. 별일도 아닌 일을 두고 주고받던 그때 말들. 아무 딴 속없이 빙그레 서로 웃던 그때 웃음들 - 처녀 때 거기 있던 그런 것들 아니에요? 정색해 보아! 어느 것들이 볕 속에 비치는가? 명경 속에 비치듯 볕 속에 삼삼허게 비치는가? 그것은 시집살이 아궁지 옆엣일 아니라, 수본(繡本)처럼 접어서 바닥에 바닥에 감추아 두었던 그 처녀 때 일이야...

귀뚜리같이 조바심쳐 쌓는 건 그건 불교에서 말하는 색심(色心)이라는 거고, 인제는 그걸 잘 견디다 보니, 인제는 영 다시 안 만나도 견딜 만한 꼭 동기간마냥으로 되었어. 나보단 한 살이 위였으니, ‘오빠’가 되어버린 셈이지. 거짓말 하나토 아니에요. 바닷물을 조여서 구슬을 망글었다가 이걸 영 안 뵈이게 멀리멀리하는 것만큼이나 애도 애도 무척은 썼지. 하하하하. 그랬더니 인젠 친형제 간쯤 됐어요. 절 앞마당 사철나무만큼이나 무관헌 사이가 맘속에서 되었어요. ‘볕이 오늘은 좋으니, 윤이 많이 나는구먼....’ 나는 가끔 생각하면 속으로 말허고 웃지. 그냥 인제는 내 많은 나무 일가들 틈에 한 동기간이 되고 말고 그만이야.”(314)

위 글은 내장사의 어느 비구니가 미당 선생의 집을 찾아와서 그의 어머니 앞에서 넋두리 삼아 내뱉은 말이다. 미당이 소학교 4학년 다닐 때라고 하니, 1925년에서 1926년 사이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불가(佛家)에 든다는 것, 스님이 된다는 것은 “새로 그 일가친척의 수를 늘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풀 속 나무 꽃들, 기고 나는 새와 짐승, 날아다니는 구름 구름들까지도 새 일가친척을 삼어서 사는 일”이다. 둘째, 스님이 되기 전이나 된 후나, 결국 이 비구니의 기억에 남은 것은 “시집간 뒷일들 아니라, 머리 땋은 처녀 때 일”이라는 것, 그래서 “새벽 저녁 우물길에서 처녀 때 만나던 얼굴들. 별일도 아닌 일을 두고 주고받던 그때 말들. 아무 딴 속없이 빙그레 서로 웃던 그때 웃음들”이라는 것이다.

이 스님이 하는 말은, 처녀였던 서울 남산골 시절 그녀가 좋아하던 ‘이 도령’이라는 한마을 총각으로 모아진다. 그녀는 무슨 연고로 제물포로 시집갔지만, 거기서 도망쳐 나온 이유도 이 도령 때문인 듯하다. 그 후 머리 깎고 여승으로 될 때에도 그 사람이 그리워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가까이 좀 가봤으면 하였다. 하지만 여러 세월이 흘러 “인제는 영 다시 안 만나도 견딜 만한 꼭 동기간마냥으로” 되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러나 그러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을 조여서 구슬을 망글었다가 이걸 영 안 뵈이게 멀리멀리 하는 것만큼이나 애도 애도 무척은 써”야 할 만큼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친형제 간쯤” 되었다고, 그래서 “절 앞마당 사철나무만큼이나 무관헌 사이가 맘속에서 되었”다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볕이 오늘은 좋으니, 윤이 많이 나는구먼....”.

삶의 희로애락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요동은 결국 하나 - 그리움의 일가친척 수를 늘이면서 조금씩 가라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수풀 속의 나무와 풀도 제 일가(一家)로 삼아 사는 일,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 일 -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아끼고 소중히 다루는 일이다. 남에게 쉽사리 드러내기 힘든 그리움의 “수본(繡本)” - “접어서 바닥에 바닥에 감추아 두었던” 수놓는 마음의 헝겊조각을 사람은 다들 몇 개씩 가지고 살지 않는가?

이 스님이 말 못할 사연을 이야기로 풀어내었다면, 그 사연을 행동과 생활 속에서 녹여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당 선생의 어머니가 여름날에 하던 모래찜은 이 뒤의 경우에 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제야 생각해본다. 이 분도 이때 그 바닷가 하늘 밑의 눈부시게 더운 모래 속에 파묻혀 앉아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날이 가는 동안에는 그만 저 영원에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를 아주 없이 하고, 저승과 이승과 자손들이 끝없는 미래의 긴긴 정신이 안 끝나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서 아주 영생하는 넋으로만 남아버린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나라 재래의 주부들이 사실은 거의 그랬던 것처럼 비로소 정신적으론 우리 집의 새 주인으로 자리를 잡은 것 아닌가.”(341)

미당의 모친이 한여름 뙤약볕에 바닷가로 나가 모래찜질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소실댁을 집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두 달 간이나 자기 집에 들어와 머문 이 소실 때문에 어머니는 지독한 신경통을 앓는다. 어디 신경통뿐이겠는가? 영육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배신과 환멸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약을 먹는 대신 여름 햇살 더운 모래 속에 자신의 몸을 파묻는다. 그래서 이것은 ‘육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의 치료의 문제’였을 것이라고 미당은 회고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제안한다. “그렇게도 못된 우리 사내들이 내 어머니처럼 두 달이나 계속해서 한번 당하고 난 뒤라고 가정해보자.” 바람난 아내가 뭇 사내를 집안에 끌어들여 남편 알게 그 짓을 한다면, 그때 남편된 자의 마음이 어떻게 되겠는가를. 위 인용문은 이런 언급 다음에 나온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 더운 모래 속에 파묻혀 여러 날이 가는 동안에 “저 영원에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를 아주 없이 하고, 저승과 이승과 자손들이 끝없는 미래의 긴긴 정신이 안 끝나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서 아주 영생하는 넋으로만 남아버린 것 아닌가.” 시인은 이렇게 반추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 못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넘어 “우리 집의 새 주인으로 자리를 잡은 것 아닌가.”

이런 어머니의 이미지를 미당은 외할머니의 삶과 잇는다. 먼 바다에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평생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집 앞마당으로 해일이 밀려들어올 때면, 이 바닷물 속에 남편의 혼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외할머니는 아마도 “많이 숨차” 하셨을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그래서 이 두 여인 - 외할머니나 어머니는 “그 사는 힘을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하늘하고 단둘이서 상의해서 만들어 가지고 산 점에서는 서로 많이 닮았다”고 판단한다. 나아가 이것은 어머니나 외할머니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천년 동안의 우리 어머니들이 서로 모두 공통으로 지녀온 힘이었고, 이 힘이 크고 질긴 덕으로 우리 사내들도 과히 더럼 타지 않고 어려운 그대로나마 지탱해온 것이다”라고 결론 내린다.(346)

그게 더러움 타지 않고 사람들이 이럭저럭 살아가는 데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다. 자기를 없앤 누군가가 있고, 하늘과 상의하여 살아간 지혜가 있다. 어쩌면 인간의 세계에서 여성이 주인이 되는 것은, 가정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들이 “새 주인”으로 자리 잡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와 현실은 늘 어긋난다. 현실은 여전히 남성적이고 억압적이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은 멀리 두고, 해하는 것들을 가까이 두는 일,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안개 속이나 햇빛 속 공중에서 살다 간 목숨들과 사귀어 만나는 일”은 여전히 삶이 걸어가야 할 미래의 방향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삶의 길이자 시의 길이기도 하다.

젊은 시인은 개울에 어린 구름이나 툇마루에 고인 고요, 혹은 감나무 그늘을 즐겨 떠올린다. 그러다가 감꽃으로 꽃 염주를 만들어주던 부안 댁을 생각하기도 하고, “산의 귀”나 “물의 낯”에 대고, 마치 그 비구니처럼, 이렇게 말을 걸기도 한다. “어느 것들이 볕 속에 비치는가? 명경 속에 비치듯 볕 속에 삼삼허게 비치는가?”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은 새와 꽃과 나무와 구름과 햇볕과 사철나무가 일가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속없이 빙그레 웃던 어린 시절의 얼굴들, 저 영원에 사는 것들... 이런 것 없이 삶이 넓고 깊어지긴 어렵다.

그리하여 시인의 일가는 나의 일가가 된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들은 인간이면 모두 그리워할 만한, 아니 그리워해야 마땅한 무엇이 된다. 그리움의 일가친척들은 나를 나에게서 우리로 나아가게 하고, 지금 여기로부터 그 너머의 영원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이 영원, 이 기나긴 정신은 모두 현실의 대안(代案)이고 대조물이며 반정립(antithesis)이다. 현실은, 그것이 반립적(反立的) 지양가능성 속에서 성찰될 수 있을 때만,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1) 서정주, 『자서전1, 2』(미당 서정주 전집 6-7권), 은행나무, 2016년. 인용은 전부 7권 『천지유정 - 문학적 자서전』에서 했고, 이후 본문에 쪽수로만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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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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