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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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으로 ‘삶의 질’을 이야기하는 시대 - 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김정구(다음소프트 차장)

‘삶의 질’이란 말은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 단어가 요즘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소셜 미디어에서 오가는 걸 보면 그렇다. 2015년 8,900여 건이었던 사용 빈도가 2018년 44,000여 건으로 늘었다. 3년 사이 5배가 넘는 증가치다.

예전 같으면 ‘삶의 질’이란 학술 논문이나 국정 과제 보고서쯤에나 등장할 만한 단어 아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 나은 삶의 지수(BLI)’를 발표한 적이 있고, 정부는 ‘국민 삶의 질 지표’ 조사 결과를 내놓곤 했다. 그때 ‘삶의 질’이란 우리 같은 사람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그들만의 언어’였다.

불과 2년 전까지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어법에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사회를 둘러싼 거대 담론을 이야기할 때 ‘삶의 질’이라는 어휘를 동원하곤 했다. 사용 빈도도 그리 높은 편이 못 됐다.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라든가, 노사 협력이나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 때, 혹은 노인 건강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할 때 정도에나 동원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삶의 질’이 거명되는 맥락은 (개인이 아닌 다수의) 국민들이 현재 처해있는 생존과 결부된 거대 담론과 연결된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사람들 사이에 ‘삶의 질’이라는 언어 사용의 빈도는 부쩍 증가하기 시작했고, 종전의 의미와는 다른 뜻에서 해석되고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거대 담론으로서의 ‘삶의 질’을 이야기하기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한 자신(개인)의 만족도라는 소소한 일상 담론에서 ‘삶의 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나 정부의 ‘국민 삶의 질 지표’ 따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애플社의 에어팟이나 공기청정기와 같은 상품과 더불어 자신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말한다.

[표1. 삶의 질 연관어 네트워크 : 2015~2017년 vs. 2018~2019(-5월)]

 

‘삶의 질’을 변화시킨 물건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질’이 정책을 통해 향상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내 삶의 질’이 무선 이어폰과 공기청정기로 바뀔 수 있는(좋아질 수 있는)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표2. 2018~2019(-5월) 삶의 질 연관 제품(서비스) Top5]

에어팟은 ‘삶의 질’의 의미가 개인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에어팟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출시된 블루투스 기반의 코드리스 이어폰도 아니고, 디자인이나 스펙(spec) 측면에서도 엄청나게 혁신적인 제품은 아니다. 출시 초기에만 해도 이 ‘콩나물 대가리’같이 생긴 이어폰 따위에 20만원이 넘는 고비용을 지불할 것이냐를 두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하지만 기기와의 자동 페어링을 통해 초기 셋팅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번거로움을 해소해줬다는 이유로, 혹은 충동적인 ‘지름’에 얼마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귀에 꽂혀있는 흰색의 콩나물대가리를 ‘힙함’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이상하게 다른 이어폰들은 비싼 거 못 사겠던데 에어팟은 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삶의 질이 수직 상승하네요ㅋㅋ 앞으로 유선 이어폰 못 쓸 듯... 지하철 타보니까 끊김 하나도 없고 유튜브 시청할 때 음향 간격 아주 잘 맞습니다. 통화 품질이 걱정이었는데 뭐 끊기는 거 하나 없이 좋습니다. ㅋㅋ 자동페어링이 아이폰 쓰는데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랄까 암튼 굿입니다. 아이폰 쓰시는 분들 에어팟 정말 추천해드립니다.”

정말로 에어팟이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줬을까? 그 말의 진위를 논하기보다, 이제는 ‘삶의 질’이란 단어가 개인의 에어팟 구매 사용담에서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거대 담론과 더불어 멀어졌던 ‘삶의 질’이라는 언어가 이제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와 함께 자연스레 사용되면서 개인의 일상 속에 안착했다는 사실을.

삶의 질과 연관된 제품과 서비스들은 그것이 있기 전후 내 삶의 변화를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할부로라도 그것들을 지른다. 공기청정기에 표시되는 초미세먼지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집안의 공기 질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미세먼지 수치가 좋아 공청기가 너무 조용한 날이면 일부러라도 생선을 구워 공기 청정기의 활동음과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졌다가 서서히 낮아짐을 확인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 아이를 칭찬한다.

로봇 청소기는 반드시 물걸레질 기능이 포함된 제품이어야 한다. 단순히 먼지만 흡입해주는 것이라면, 외출 후 돌아온 집에서도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물걸레질까지 해줬다면 청소한 티가 난다. 건조기만 해도, 써본 사람만이 안다는 뽀송뽀송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결과물과, 망에 걸러져 나오는 먼지 뭉치로 ‘내가 이렇게 더러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신세계라 부르며 ‘내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간증한다.

이렇듯 제품이나 서비스도 성능이나 스펙이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것 보다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는 가시적 결과물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주역으로 높이 평가한다.

 

혁신은 세상이 놀란 것이 아니라 내가 만족한 것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발화된 개인의 이야기를 모아 들여다보면 점차 일상의 소소한 담론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더불어 ‘삶의 질’처럼 언어의 의미, 혹은 언어의 사용 맥락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한다. 이와 유사한 변화를 겪고 있는 또 다른 단어가 ‘혁신’이다.

2015년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혁신’적인 브랜드와 제품의 정상에는 애플 아이폰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유튜브에 자리를 내줬다. 무슨 뜻일까? 혁신의 기준이 ‘세계가,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인정한 결과물’에서 ‘개인에게 주관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삶의 질’ 역시 개인화된 혁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언어다.

[표3. 혁신에 대한 주요 표현 변화 요약]

현재 한국 사회, 한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현상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다. 사람들은 개인화된 ‘삶의 질’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소셜 미디어 팔로워나, 커뮤니티 구성원에 해당하는 느슨한 관계의 누군가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기 위한 언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개인화로 가는 흐름의 기저에는 ‘주관적 판단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 개인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지켜보며 ‘주관적 판단 기준’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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