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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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하는 자신감, 상처받는 자존감 - 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정유라(다음소프트) 다음소프트 연구원. 학사과정으로 경영학과 불문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으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쉽게 감명 받고 그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것이 취미이다. 소셜 빅데이터에 나타난 라이프 스타일의 현재와 변화를 고객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그것을 왜곡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직업을 통해 스스로가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연재를 시작하며

한 집단이 자주 쓰는 언어에는 욕망이 숨어 있다. 평범한 단어라도 어느 때 반복해서 애용된다면 특별한 고민이나 관심, 사회상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다. 시대 감성과 사회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한다는 소셜 미디어. 그 속에서 그려지는 ‘언어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빅데이터로 읽는 언어 속 마음 풍경]은 소셜 미디어상의 빅데이터를 통해 애용되는 ‘언어’ 뒤에 숨은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상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소셜 빅데이터로 건져 올린 시대의 언어와 독해를 통해 독자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출판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Image by Olichel Adamovich from Pixabay)

자존감을 글로 배우는 시대

연애를 글로 배웠다는 우스갯말처럼, 요즘은 ‘자존감’도 글로 배운다. 자존감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서점으로 간다. 포탈 검색창에 ‘자존감’을 치면 ‘자존감 높이는 책’이 추천 검색어로 뜰 정도다. ‘자존감을 높이는 책’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자존감 수업」(윤홍균 저/심플라이프)은 최근 80만 부 돌파 기념 개정판까지 출간했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저/마음의숲)는 100쇄 기념 에디션이 나왔다.

감 중의 감은 ‘자존감’

[표1. OO감 언급 순위 변화/ ㅇㅇ감 으로 끝나는 속성의 연도별 언급량을 비교]

소셜 미디어에서 ‘감’으로 끝나는 속성 중 언급량이 가장 높은 것은 ‘자신감’이다. 그 뒤를 ‘자존감’이 잇는다. 2010년 초반에만 해도 ‘책임감’, ‘존재감’ 심지어 ‘예능감’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 하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자존감’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그 뒤로도 꾸준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회를 위한 정의감, 분위기를 띄우는 예능감,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존재감이 아닌 그저 ‘나’를 위한 ‘자존감’에 대한 높은 관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와 조직으로부터 요구되던 ‘책임감’의 압박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자각 때문일까? 혹은 개인주의의 심화가 사회에 반영된 결과일까? 어쨌든 지금 사람들이 바라는 감정 교육에서 수강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이 ‘자존감’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존감’을 푸는 열쇠: 상처, 남들, 이해

[표2. 자신감 VS. 자존감 연관어 네트워크 비교/ 자신감과 자존감의 연관어 상위 30위를 바탕으로 공통 연관어와 차별 연관어를 비교]

‘자존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이하면 좋을까? 이 단어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속성인 ‘자신감’과의 차이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자존감’, ’자신감’의 상위 30개 연관어를 살펴보면 ‘자신감’에는 없고 ‘자존감’에만 나타나는 세 가지 단어가 있다. ‘상처’, ‘남들’, ‘이해’다. 우리 시대 ‘자존감’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해독할 수 있게 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자존감은 상처로부터 나를 지켜내고자 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자존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슨 상처가 그리도 많을까? 원인은 두 번째 키워드에 있다. 바로 ‘남들’이다. ‘자신감’이 어떤 목표를 바탕으로 한 행위의 결과와 성과에 크게 영향 받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관계 의존적이다.
자존감의 관계 의존적 성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가 바로 ‘자존감 도둑’이다. 무례한 언행으로 나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타인의 무례함에 무심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이니까, 친구끼리,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라는 핑계로 조언의 탈을 쓴 무례한 발언들을 일삼던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흔적이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 저/가나출판사),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말아라>(유은정 저/21세기북스)를 포함한 다양한 관련 서적들 역시 무례한 타인, 즉 자존감 도둑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고 내 자존감을 지키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충고나 조언이 아닌, 마지막 키워드 ‘이해’다. 자신감은 타인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자존감은 타인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해받기 원하는 것은 ‘유능한’, ‘멋진’과 같은 수식어를 동반한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이다. 발전과 성장을 강요하고, ‘열심히’와 ‘열정’을 필수 성품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전에서 자유로운,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이해를 강렬히 원하는 마음이 상처 받은 개인들에게 ‘자존감’이라는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하라

너무 쉽게 외모를 지적하는 타인, 결혼이나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열정과 패기를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혹은 과거의 정답지 밖으로 발을 디딘 ‘나’는 그것들을 강요하는 ‘남들’의 지적에 ‘상처’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받고 싶어한다. 요컨대 자존감 교육은 ‘남들로부터 상처 받지 않기’에서 시작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자존감을 중시하는 현상을 자칫 엄살이나 나약함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들은 상처를 방치하거나 무례함을 방관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정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도, 목적 없는 최선을 택한 사람들도 아니다. 이들은 적어도 부조리와 무례함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서로를 배려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충고가 아닌 이해와 인정이라는 점을 수긍할 때 우리는 서점가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자존감 열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위한 건강한 예민함으로 타인을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이 특별한 감정 교육의 열풍 속에 있다고 낙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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