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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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없는 동네 책방이 될 때까지 - 서점 다이어리

강정아(책과아이들 대표) 1997년부터 부산에서 ‘책과아이들’을 열어 남편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꾸리고 있다. 올해 스무 아홉, 스물 셋, 스물, 열일곱 네 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힘을 합해 책방의 허드레 일들을 해왔고 책방 식구들과 회원들의 힘으로 여직껏 버텨왔다. 아이들과 책 틈에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찾아오는 아이들이 ‘할머니~’하고 부른다. 반가운 인사로 듣는다.

책방의 공동대표인 우리 부부는 책방 공간을 오르내리다 자정을 넘기는 건 당연,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피로가 몰려오면, 시계도 보지 않고 3시구나 합니다. 그리고 누워 뒤척이다 바깥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도 있지요. 물론 매일 이렇게 초인적이진 않습니다. 오늘은 10시경에 픽 쓰러져 잠들었다가 자정 전에 눈을 떴네요. ‘그래, 오늘은 토요일이었지!’

서점의 마당 모습

거의 매주 토요일은 오전 9시 경부터 가족 단위로 100여명을 만납니다. 3세부터 7세까지 유아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하기 때문입니다. 30여 가족이 참여하는데 엄마, 아빠, 형제, 조부모까지 동반하곤 해 토요일 오전은 와글와글 분주합니다. 책 매출에 비하면 번거로움이 많은 편이나 저희가 자초한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과 책방에 나들이 와 주세요!”
“유아기에 정기적으로 서점에 산책한 경험은 정서안정은 물론 자연스럽게 독서가의 길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자장가, 전래동요, 옛이야기를 익혀서 생활화해요. 생활과 육아의 온갖 지혜가 담겨 있어요.”

독서를 많이 한다는 북유럽 쪽은 부모와 영유아들에게 구청수준에서 저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준비 없이 부모가 된 터라 초보부모 시기에 느끼는 고립과 불안에서 이런 주말 프로그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육아독박’이라는 말들을 하더군요. 그래서 가족과 이웃이 선배 부모와 모여 어린이문학을 통해 대화하고 지혜를 쌓자는 것이지요.

옛이야기를 듣는 유아와 부모

23년 전에 12평짜리 ‘어린이 전문서점’을 열며 무엇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요? 그러나 시작부터 저 생각은 품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입니다. 시작 때의 창문에 적은 카피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아이들에게 기쁨을’이었습니다. 예술성 있는 단행본 책을 적극 큐레이션하는 책방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문학과 예술성’으로 아이들에게 양질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이웃과 남성들과 사회가 함께 육아와 교육을 고민하는 곳이었으면 했습니다. 그 무기로 선택한 것은 ‘어린이문학’이었구요.

그동안 이사를 다니며 여러 가지 카피를 창문에 적었네요. 크게 다르진 않지만 조금씩 정체성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공간에선 1층 서점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서점나들이는 독서의욕을 키워줍니다.’를, 2층 책 사랑방엔 ‘<책과아이들>은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곳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지금, 세 번째 이사한 공간에선 ‘<책과아이들>은 어린이문학을 즐기고 어린이문학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책방입니다.’라고 합니다. 어린이서점에서 어린이청소년서점으로, 이제 동네책방이라 하네요. 청소년이 점점 많이 오더니, 남녀노소 가족과 이웃이 오는 책방이 되었고 결국 북큐레이션도 거기에 맞춰가야 해 자연스레 ‘동네책방’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는 책을 갖다놓고 함께 읽고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했구요. 그것이 어린이문학정신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론 또 어떻게 될까요? 올해 지속과 관련한 큰 고민은 일단 내려놓았고, 허락한다면 앞으로 20년 더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책방의 모습

오늘은 오후마저도 100여명의 독자들과 몸과 마음을 부벼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실내에 쌓이는 사람 냄새에 자꾸 문을 열어야 할 지경으로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좋은 날이었지요. 그림책 <오늘은 좋은 날>처럼 좋은 날과 힘든 날은 함께 오기 마련입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욕심인 걸 책방을 하며 잘 알고 있습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은 ‘조용히 책을 봐서 좋아~’ 손님이 들락거리기만 해서 산만한 날은 ‘그래, 오늘은 책방이 홍보 된 거야’하며 위로하는 힘을 축적해온 세월이니까요.

그러나 오늘이야말로 ‘로또 당첨’이었습니다. ‘창비 글쟁이’ 모임에서 작가 선생님들이 부산과 김해를 찾아오신답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가꾼 공간이 ‘화수분’이 되어 준 거라 했고 또 누군가는 오랜 기간 애써온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 했습니다. 여섯 분의 작가님이 독자를 만나러 우리 서점에 오시니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었지요. 2주 전부터 SNS로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고 작가님들 책을 수십 권씩 쌓아두었습니다. 문자는 마음만 먹으면 1000여 통을 보낼 수 있습니다. 유아기부터 부모와 책방나들이를 한 이들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비 글쟁이 행사

오늘처럼 주말마다 온 유아와 부모들이 오랜 책방고객이 되어준 겁니다. 다른 이들보다 그들이 모임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토요일 오전의 번잡함을 견뎌낸 것이 책방의 생명을 유지시켜준 것이었지요. 오늘 참여한 초등 1학년부터 청소년, 부모들의 얼굴을 보면 낯선 이가 드물거든요. 결국 그들이 책방을 만들어가는 이들입니다. 이들과 생활연극도 만들고 독서모임, 북 토크를 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모해야 하는 에너지는 어디까지일까요? 서점은 책을 파는 곳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거의 ‘쇼 쇼 쇼’를 하는 기분이에요. 오늘의 이벤트는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하루 매출 목표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계산한 이 매출을 달성하는 날은 한 달에 다섯 손가락을 꼽기가 힘듭니다.

그리하여! 책방은 지역사회에서 문화공간의 거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입니다. 서점을 차리고 앉아서 책을 읽고 고르고 전시하는 당시로선 순수한 서점 일, 즉 북큐레이션을 하고 있으니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구, 책을 읽어줘야겠구나. 이리 좋은 이야기를 모르고 엉뚱한 이야기를 읽어대는구나’ 하는 생각에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작가를 초빙하곤 했습니다. 물론 다른 필요성도 있어서 가능했지만요.

서점의 모습

‘이 시대 서점이란?’하고 의미 부여를 다시 하기도 하며 기획자가 되어 프로그램 만들기를 20년 가까이 해도 여전히 더 많이 그걸 해야만 합니다. 이제 그걸 하라고 여러 기관에서 공모사업과 지원을 해줍니다. ‘생활문화시설’로 인정도 해줍니다. 다행히 십시일반 내던 행사비와 별도 지출이 줄었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매출까지 성공하는 일은 드뭅니다. 대부분 이벤트에 몰입하지, 온 김에 서점을 돌아보며 책을 고르는 문화적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시작하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선 2시간가량 참여하곤 바쁜 듯 훅 빠져나가지요.

거기다 지원 사업이 많아지며 무료행사에 길들어 사적인 공간마저 자신의 몫인 냥 당당히 누리는 무례 앞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쓰레기와 지저분해진 화장실과 실내 공간, 어질러진 책들, 냉·난방비를 보고는 계산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이제 이벤트에 책을 포함시키는 기획을 합니다. 이러면 서점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게 하긴 점점 어렵지 않을까요? 어렵습니다. 그런 품격 있는 독자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게 참 슬픕니다. 우리 서점이 과연 독자나 출판계의 수준을 높여가는 문화공간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머뭅니다. 그러다 또 행사에 바빠지곤 합니다. 텅 빈 서점 보단 낫기 때문이지요. 아직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없던 때와 온라인 책방의 활성, 중소형 동네 책방의 쇠락, 스마트폰과 전자책으로 책방에서 여유롭게 책을 뒤적이는 독자층을 이미 잃어버린 거지요. 뒤늦게 불완전하나마 도서정가제를 만들었으나 그마저 요리조리 피해 책을 시장에 내놓는 방법들은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마저 유명무실하게 합니다. 독자가 아닌 고객을 끌어들이는 선물, 포인트제, 매대 판매 등의 홍보와 경쟁으로 저속한 소비를 길들이고, 동네책방은 동네책방대로 이벤트를 팔고 있는 중입니다. 지자체마다 기관마다 권장도서를 지정해 특정 책을 집중해 알리고 대량구매를 유도하니 독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힘과 기회가 줄어듭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독자의 비평이 모여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회는 점점 멀어져가는 중입니다.

좋아하는 프랑스 국어 선생님이자 작가인 다니엘 페나크는 국어시간에 아이들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읽게 하며 말합니다. 자신의 독서교육은 우리 곁에 괜찮은 남성독자, 여성독자를 있게 하는 거라구요. 우리 사회 역시 정상적인 목적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간이 걸려도 지속하고 기다려야 무르익습니다.

서점에 들어오는 손님을 보며 이런 꿈을 꾸고 앉았습니다. 가족이 출근한 아침 시간, 손자는 할머니랑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합니다. 그러다 책방에 들어와 마당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고양이도 쳐다보고, 멧비둘기, 동박새, 직박구리, 참새들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 만큼만 흔들흔들 그네에서 햇볕을 쪼이다, 서점으로 빼꼼 들어와 책을 몇 권 뒤적입니다. 그리고 한두 권 사들고 나서는 모습, 그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이제 혼자 주기적으로 서점 책을 둘러봅니다. 이미 동네 서점 책 정도는 거의 꿰고 있고, 새로 들어온 책만 슬슬 살피는 중, 그러다 이제 서점에 책을 주문하는 청소년이 되지요. 그런 청소년과 어른들이 우리 동네 책방을 큐레이션하는 셈인 거구요.

조용해진 책방

‘동네 책방 서가는 동네 사람들이 만듭니다. 우리의 서가는 우리 동네의 수준입니다’ 또 하나의 카피가 됩니다. 다중지성이 이룬 큐레이션 도서들은 지역의 학교나 도서관에서 바로 책을 뽑아 들고 수서하는 곳, 납품의뢰를 하는 곳이 되어 동네책방의 재고는 회전되고, 이런 선순환이 될 수 있게 동네 책방들이 미용실만큼 생겨 도서유통의 실핏줄이 된다면, 출판사가 초판을 찍어 만 권 정도가 책방에 퍼져나간다면… ‘미용실만큼 많은 동네책방을!’

사실 할머니 손잡고 두 살 때부터 아장아장 매일 책방나들이 하던 아이는 있었습니다. 동호는 청년이 되어 유학을 간 상태라 계속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가 3년 전 쪽지를 주고 갔지요. “책과아이들 고맙습니다. 제 반 평생을 키운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문맥이 안 맞는 쪽지라 웃었으나 ‘에너지 바’였지요. 그리고 두고두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고마운 것이 아니라 ‘책과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 잘못된 문장이라 생각했는데, 동호는 ‘책과아이들’이 하나의 유기체라고 느낀 듯했습니다. 저도 이제 그리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가 애쓴 ‘책과아이들’이 아니라 우주의 수많은 분자와 원자 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책과아이들’이라구요. <책과아이들>의 생명이 따로 있다는 걸 이제 알고 같이 가보려 합니다.

동호와 그 아이 친구들이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어쩌면 그들의 아기를 데리고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쯤이면, 우리에게 동네 책방이 있었고, 거기서 자랐고, 예술적인 어린이문학을 함께 즐겼던 첫 세대가 된 어른이 다음 세대와 문을 밀고 들어올 때쯤이면, 계몽도 홍보도 이벤트도 없이 그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고 독서 동아리 모임 장소로 빌려 쓰고, 함께 뭔가를 기획해서 동네문화를 만들어 가지 않을까요? 누군가 지나친 에너지를 쓰는 적극적인 의도가 없이도 동네 책방은 자연스레 숨쉬고 있지 않을까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새들이 깨어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동네책방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전국 80여 개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단체입니다. ‘동네책방’은 전국 각지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며, 단행본 도서를 주로 취급하는 작은 서점입니다. 여기서 ‘작은’의 의미는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 자본과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조금 더디더라도 함께 천천히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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