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2019.05

VO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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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신임회장 "출판 앱으로 소통 확대할 것"

전병근(정책연구통계센터 센터장)

"출판계가 변화의 흐름에 비껴갈 것인가, 정면으로 마주할 것인가, 이 선택이 10년 후 출판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올해로 스물한 살이 된 한국출판인회의. 새로운 조타수가 된 김학원 회장(휴머니스트 대표)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분명한 힘이 느껴졌다. '변화의 흐름에 비껴가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출판인회의는 국내 단행본 출판사들이 결성한 단체다.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고비 때마다 출판계에서 중요한 일을 자처하고 제 목소리를 내왔다는 평을 듣는다. 올초 강맑실 회장(사계절 대표)이 이끈 10기 집행부가 임기 2년을 마치고 11기가 새로 출범했다. 그 중심에 선 김학원 회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구상을 들어봤다. 김 회장은 새로운 사업으로 출판 모바일 앱 개발을 통해 출판계 내부의 네트워킹과 함께 외부와의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는 포부를 펼쳐보였다. 디지털 기술에 따른 환경 변화와 함께 새롭게 문화 소비와 생산의 주체로 부상한 젊은 세대에 출판계가 주목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출판이라는 업의 의미와 보람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도 들려줬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4일 휴머니스트 대표 집무실에서 전병근 정책통계연구센터장이 진행했다. 아래 전문을 싣는다. 내용의 명료함을 위해 약간의 편집을 거쳤다.

-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취임하신 지 얼마나 되셨지요?

“석 달쯤 됐습니다.”

- 마침 연초에 출판인회의 20주년을 기념한 책이 나왔지요. 이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간 출판인회의가 걸어온 길을 간략히 정리해주시겠습니까?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 (사진촬영: 김원)

“작년에 꼭 20년이 됐습니다. 1998년 11월에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320여 명의 출판인들이 모여서 '출판인 선언'으로 시작했지요. 이젠 '출판인회의' 없는 출판계는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인 한두 가지만 말씀드릴까요. 우선 첫 번째는 서울출판예비학교(SBI)를 들 수 있습니다. SBI는 출판인회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출판인회의를 시작할 때 출판 아카데미부터 열었어요. 그게 축적되면서 큰 호응을 얻고 강사진이 꾸려지고 점점 커리큘럼이 확대됐지요. 아카데미 정도가 아니라 출판계의 대표적인 학교가 있어야 한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면서 외국 사례들도 보고 하면서 3차례 이상 몇 년간 기부를 거쳐 SBI 건물을 지었어요. 여기에 출판인회의 사무실도 차려졌지요. 지금 출판인회의 건물 80%가 SBI를 위해 지어진 거예요. 지금까지 15년 동안 예비 출판인 800여 명을 양성하였고 재직자 수강생이 만 명이 넘습니다.”

- 출판계에 SBI 출신들이 상당하겠네요.

“출판사에 근무하는 분들 절반 이상이 SBI 재직자 과정을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예비출판인 양성과정은 1년에 한 기수씩 편집자반, 마케터반, 디자인반 지망생을 뽑아서 6개월 교육 과정을 거쳐 취업을 시킵니다. 취업률은 95%에 이릅니다. 고용노동부 지원 업체 중에서 7,8년째 1위에요. 전국의 대학 졸업자들이 지원하는데 지방대에서는 한두 달 전에 와서 시험 준비를 할 정도고 일부이지만 재수, 삼수를 통해 입학하는 경우도 있지요.”

- 입학시험 때문에요?

“네. 경쟁률이 편집자반 경우는 매년 7대1, 8대1 정도 됩니다. 예전에 SBI가 없었을 때는 신입을 뽑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경험이 없는 신입을 경력자들이 가르치려면 힘도 들고 오래 걸리거든요. 이제는 6개월 정규 과정을 거치니까 믿고 신입을 뽑지요.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신입을 선발할 수 있다는 건 업계에서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 졸업생들이 지금은 과장, 팀장, 차장까지 됐어요. 15년이 지났으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 출판계 전체 인력이 상향평준화하는데 SBI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단과대 규모의 시설과 강사진, 교육과정과 교재를 가지고 있으니까 출판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 또 다른 대표적인 성과는 뭐지요?

“도서정가제의 정착을 들 수 있습니다. 3년 전 개정 법률 시행 당시만 해도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3년째 접어들면서 지금은 업계 전반에 할인 경쟁이 사라지고 가격이 아닌 책의 가치를 보고 판단하는 공정한 문화 시장이 형성됐다는 게 중평입니다. 초기에 이견이었던 출판사들도 이제는 도서정가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고개를 젓습니다. 특히 젊은 창업자들은 쌍수를 들고 반기지요. 왜냐면 종수 목록도 없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입장에서는 기존 출판사들이 20%, 30% 할인하게 되면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도서정가제의 제도화와 안정화에 출판인회의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이런 성과만 보더라도 출판인회의가 출판 산업과 문화를 위한 건강한 환경 조성에 가장 앞장서왔다고 자부합니다.”

- 회원 수나 조직 규모 면에서는 어떤가요?

“올 초에 제가 취임하면서 조사해보니 회원사가 461개 사이고, 전체 종사자는 9천 5백 여 명 정도입니다. 461개 회원사에서 1년간 발행하는 도서 종수는 1만 여 종 됩니다. 출판사당 직원 수는 평균 20명에, 발행 도서는 연평균 21종 정도 됩니다.”

- 출판인회의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단행본 출판사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에 비해 어떤 변화가 있나요?

“단행본 출판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대중이 책을 읽기 시작한, 대중 서점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게 90년대입니다. 자기 돈으로 영화관 가고 서점가고 갤러리 가는 대중문화 자체가 80년대 민주화 과정 이후인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났지요. 그전의 서점 문화란 전체 성인 인구의 20% 내외에 불과한 대학생과 학자, 지식인 위주의 문화였어요. 대중적인 단행본 서점 문화는 70~80년대에 시작해서 90년대에 이르러 활짝 열렸죠. 그 열린 공간에서 출판인회의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 흐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지요. 2000년대 들어오면서는 경제경영서, 실용서, 자기계발서 등이 늘어나면서 단행본 영역이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과학이 대중화했고 실용 취미 영역도 확장됐고, 아동서와 청소년 쪽도 확장되면서, 유아에서부터 장년까지 세대별 라인업까지 더해진 거죠. 이번 11기 출판인회의 회장단에 아동 쪽에서 바람의 아이들 최윤정 대표가, 문학에서는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가, 실용 분야에서는 길벗출판사 이종원 대표가 부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이런 변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단행본 출판계도, 이를 담아내는 서점도 다양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회원 수도 늘고 출판 분야도 다양해졌다고 하셨는데, 회원들 결속력은 어떤가요?

“출판인회의는 상대적으로 공간적인 밀집성과 세대적, 시대적 공감에 바탕을 둔 소통의 힘이 좀 있어요. 단행본 출판사들이 주로 마포, 파주에 몰려 있잖아요. 대표들도 4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에 집중돼 있지요. 관계들도 촘촘한 편입니다. 무엇보다 타 업종이나 분야에 비해 경쟁이 덜합니다. 가령, 공지영 팬은 공지영 팬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팬은 베르베르 팬인 거지, 누가 30%를 가져간다고 해서 다른 누구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관계가 아니지요. 오히려 어느 작가가 잘하면 전체 시장을 키우는 면이 있습니다. 왜냐면 세계에서 한 가지 상품만 팔고도 번창하는 업종은 딱 두 개밖에 없습니다. 꽃이랑 책이지요. 꽃집에는 꽃만 팔고, 서점에는 책만 팔아요. 그것만 팔아도 되거든요. 다만 그만큼 다양한 꽃과 책을 팔뿐이지요. 다양할수록 손님이 많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단행본은 서로 모일수록 장사가 잘 돼요. 그러니 기본적으로 단행본은 서로 협력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매대 경쟁을 하거나 저자나 해외 판권을 두고 경쟁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제로섬 관계라기보다 상생 관계에 가까워요. 그래서 다른 업종에 비해 소통도 좋은 편이고 의결도 잘 되고 내부 친목 모임들도 아주 많아요.”

- 출판계 내부도 들여다보면 이른바 소수의 메이저와 다수의 신생사들 간에는 입장 차이가 있을 것도 같은데요, 관계는 어떤가요? 출판인회의 차원에서는 작은 회원사에 대한 지원이나 배려 같은 게 있나요?

“다른 업계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곳이 출판이에요. 엄청난 자본력이 드는 것도 아니고, 유통만 해도 출판사 등록해서 책만 내면 일단 다 받아주잖아요. 차별도 덜한 편이지요. 일반 중소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요. 다만 이제 단행본 출판업계도 오래 되다 보니 양극화 경향이 나타나지요. 결국 출판은 목록의 축적인데, 만종 목록의 출판사와 10종 목록의 출판사는 일단 서점에서 대우가 다르거든요. 목록을 쌓지 못한 신생 출판사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은 저희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40대 젊은 사장들의 유입이 최근 5년 사이에 상당히 늘었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하면 서점의 공급률이나 기회의 공정성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지, 유통위원회나 출판유통심의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또 이번 11기 집행부에서는 독립출판상생, 독립출판위원회를 따로 준비해, 이들이 어떤 행사를 할 때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쪽으로 기획을 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엔 무엇보다도 7월 초쯤에 출판앱이 출시되면 자연스럽게 회원사들의 대표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서 이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협력 활동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컨대 작은 출판사들이 물량 때문에 곤란을 겪는 종이 구매를 공동으로 진행한다거나, 장비나 소프트웨어도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요.”

- 출판앱을 말씀하셨는데요, 새롭게 구상하고 계신 것들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우선은 기존의 많은 일들을 이어서 잘해 나가는 것이 있겠지요. 11기 집행부의 임기는 2020년까지입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구상의 핵심은 2020년부터 2030년을 내다보며 새롭게 부는 변화의 바람에 대비하는 일들을 하는 겁니다. 새로운 10년의 변화를 맞아 개별 출판사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하면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가? 해답의 첫 걸음은 모바일 기반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단행본 출판계의 모든 정보의 유통과 소통을 모바일로 전환하는 업계 내부의 과제와, 단행본 출판 콘텐츠를 모바일 환경으로 모아내는 외부적인 과제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 변화의 핵심은 디지털 환경 변화, 미디어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향후 10년인 2020년에서 2030년까지 변화의 핵심은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어요. 하나는 모바일로의 집중과 AI 대중화라는 기술 환경의 변화입니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1세대이자 밀레니엄 세대이며 새로운 문화 취향 세대인 1980년대생과 함께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모바일 앱 세대인 1990년대생이 서점 문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단행본 출판계가 이 환경 변화와 주체의 변화 흐름에 비껴갈 것인가, 정면으로 마주할 것인가, 이 선택이 10년 후 출판의 미래를 좌우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는 출판계의 모바일 네트워킹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11기 집행부는 출범 초기부터 ‘2020~2030년 모바일과 AI 환경 및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맞이하는 10년 계획’을 기획하고 1단계 과제로 올 7월 중순쯤 출판계 대표와 종사자들을 위한 출판앱을 선보이려고 지금 힘을 쏟고 있습니다. 40대 출판사 대표들을 중심으로 출판앱 TF팀을 구성해 매주 모이고 있고, 6월에는 시험 과정을 거쳐 7월 중순에는 회원사 대표와 종사자들, 출판 관련 기관이나 단체,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식 발표하고 상용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 야심찬 계획 같습니다. 초기에 가입자를 얼마나 모으느냐가 관건일 텐데요.

"우선은 출판인회의 461개 회원사 대표와 9천5백 명 종사자의 네트워킹을 목표로 합니다. SBI 과정을 수료한 1만 여 재직자들 역시 이전 데이터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출판계가 홈페이지 시대에서 한 걸음 나아가 모바일앱 시대를 여는 거죠. 출판앱 시대가 열리면 출판정보 혁명의 실상을 절감할 수 있을 겁니다. 우선, 구직의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몇 십 명, 몇 백 명 정도의 정보 공유 수준에서 몇 천 명이 실시간으로 구직 정보를 공유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출판 경영과 업무 환경이 개별 출판사에서 다양한 연계와 연대의 영역으로 확장될 겁니다. 출판계의 중요한 인력 풀인 프리랜서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관련인들도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인 것은 6, 7월이면 공개될 겁니다.”

- 출판계를 대상으로 시작하시겠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확장성도 염두에 두신 건가요?

“일단은 출판사 대표와 종사자들의 연결이 핵심이지만, 출판계의 다양한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모바일상에서 모이고 각 주체들이 활용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요구와 확장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걸로 봅니다. 일반 독자와 출판 콘텐츠가 모바일 IT 기술 환경과 만나는 프로젝트는 별도로 이후에 추진할 계획입니다. 올 9월 경에는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7월에 출판앱이 선보이고 9월에 출판앱의 웹 버전이 선보이면 SBI의 모든 과정을 모바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과의 소통은 SBI의 예비 양성과정 지원자들의 채널로 열리기 시작하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 출판단체 대표의 입에서 모바일 앱을 통한 플랫폼 구축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신선하게 들립니다. 그만큼 출판계는 IT라든가 기술 혁신 쪽에는 소극적이거나 신중한 편이었지요.

“글쎄요. 저는 일반적으로 봤을 땐 출판계가 기본적으로는 IT나 디지털 환경 변화의 큰 흐름에서는 잘 적응해 왔다고 봐요. 일단 쓰는 행위에서부터 제작 환경에 이르기까지 이젠 다 디지털로 바뀌었고. 그 다음 유통도 온라인 서점 등을 통해 네트워킹을 했지요. 다만 이제는 제조자가 자신의 주방까지 공개하는 시대인데, 아직 출판계는 내부 주방을 웹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요. 이제 출판앱을 통해 출판인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책을 만들고,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정보와 지식,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는지도 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밖으로도 공개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출판계의 빅 데이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바일에서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경험과 정보를 축적해가면 일반인들도 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와서 출판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금방 도래하겠지요.”

- 출판앱은 회원제인 거죠?

“구인구직은 회원 가입을 해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정보는 회원 가입과 상관없이 다 열람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상으로 간단한 가입 절차만 거치면 출판계에서 돌아가는 것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가입은 실명으로 하지만 닉네임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출판계 최초의 모바일 디지털 네트워킹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저로서도 예측하기 힘듭니다. 앱 세대인 40대 대표들이 주도하는 만큼 저 역시 이런 흐름에 빨리 적응하면서 그 과정을 즐기고 싶습니다. 어떤 닉네임으로 활동할지 생각 중입니다.”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 (사진촬영: 김원)

- 출판 정책과 관련해서는 목표나 추진하시려는 사안이 있나요?

“지금까지 변화가 기술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였다면 이제부터 변화의 핵심은 주체의 변화라고 봅니다. 생물학적 변화, 세대의 변화이지요. 이전과 다른 대중문화의 주체가 이미 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지난 10년간 변화를 몰고 온 80년대생, 그리고 이제 새로운 주체로 등장할 90년대생들. 이들이 문화적 변화의 핵심이에요. 2013년에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의 바로 그 80년대생이 우리 사회 대중문화의 소비 리더로 우뚝 섰잖아요. 영화관, 서점, 공연장, 갤러리는 물론 국내외 거의 모든 여행지에 이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삶의 주어는 나예요. 이전 세대는 우리였죠. 사물과 세상을 대하고 인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어요. 이들의 초점은 현재예요. 이전 세대에게 현재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희생하는 것이었다면 이들은 현재가 삶의 중심이에요. 일상에서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즐깁니다. 고양이하고 살기도 하고 동성 친구와 살기도 합니다. 새로운 30대들인 이들의 새로운 문화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디지털 환경과 접목되어 생중계되면서 우리 사회 전반을 바꾸고 있습니다. 출판계의 눈으로 볼 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이들이 독자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읽으면서 쓰는, 독자이며 저자인 시대를 열고 있어요.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30대 독자와 저자가 늘었어요. 읽고 쓰는 행위에도 기존 세대와는 다른 변화가 뚜렷합니다. 2020년대에 이르면 90년대생이 30대에 접어들어 80년대생과 합류하면서 이런 변화의 양상은 더 확장될 겁니다. 물론 출판계가 고령화에 대비하는 정책들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함께 불고 있는 문화적 격변의 흐름을 잘 읽고, 새로운 세대, 새로운 IT 환경과 출판 콘텐츠가 어떻게 소통하며 출판생태계를 새롭게 재구성해갈지 잘 관찰해내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출판을 결정짓는 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잠재력으로 점점 커져갈 새로운 세대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 그 연결 고리로 모바일 기반 대응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자기 변신 과정에서 본래 모습을 잃게 될 위험은 없을까요?

“책의 외형이나 형상, 이미지에 대한 통념을 우선 버려야 합니다. 송곳의 본질은 송곳의 형상이 아니라 ‘구멍을 뚫는 도구’입니다. 구멍을 뚫는 도구가 송곳밖에 없었던 시기에는 송곳이 더 정교하고 다양한 모양만 갖추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활자 기반의 읽기 중심 미디어가 시장을 주도했던 시절에는 책이 다양한 모습으로만 진화하면 됐어요. 하지만 지금과 다가올 시대에는 읽기의 정교함과 다양함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읽기가 말하기와 만나고, 쓰기와 만나고, 듣기와 만나고, 보기와 만나고. 그리기와도 만나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출판이 ‘송곳’의 외양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구멍 뚫는 도구’로 상상하고 변신해야 합니다. 과거에 출판사의 주요 기반은 쓰는 저자와 읽는 독자였습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했어요. 말하는 저자, 그리는 저자, 쓰는 독자, 듣는 독자는 물론 읽고 쓰고 말하고 그리는 독자이자 저자까지,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 텍스트의 다원적인 확장성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네. 텍스트의 확장성과 연결성으로 사고하면, 우리가 뭘 잃어버릴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훨씬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되지요. 전통적인 책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거기서 소통성이 나옵니다. 그렇게 보면 10년 후, 20년 후 출판사의 모습도 바뀔 수 있지요. 예전에 e북, 오디오북이라는 말이 있었나요?”

-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저자 강연을 듣거나, 책 소개 유튜브 동영상을 본 후에 재미있었다고 하고는 정작 책을 읽는 독서로는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지요.

“저는 책으로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겠죠. 강연 자체가 하나의 책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책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강연을 했다면, 지금부터는 강연을 하나의 책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진우 교수의 <니체 인생 강의>를 책이 아닌 EBS 인문학 강의로만 듣고도 독서 못지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지요. 눈으로 읽으나, 귀로 들으나 종착점은 뇌이니까요. 그런 강의를 출판사에서 기획하고 만들면 되지요.”

- 대단히 확장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갈 경우엔 에디터가 종이책 에디터만이 아니라 강연 에디터가 되지요.”

- 실제로 일부 출판사에서는 그런 전향적인 움직임들이 있지요?

“물론입니다. 10년만 지나면 굉장히 다양한 에디터들이 나올 거예요. 얼마 전에 저희 회사의 북미디어팀 과장이 전자책과 팟캐스트 방송을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책을 기획해서 출시했어요. 새로운 개념의 에디터 역할을 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시도가 처음이라 무슨 책이라 불러야 할지 본인도 고민하더군요. 이런 일이 더 자주 더 다양하게 벌어질 겁니다. 책의 확장성에 따라 에디터의 개념도 달라지고 새로운 에디터들도 등장하겠지요. 제가 팟캐스트를 진행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오늘 아침에 본 외신의 기획 기사 주제가 'Editor in chief(편집장)'이더군요. 앞으로 유망한 직종이 편집장이라는 얘긴데, 비단 출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서 주요 직무로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상품과 서비스를 막론하고 기업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그 방면의 능력자가 중요해진다는 얘기지요.

“맞습니다.”

- 책이 그런 식으로 다원화하면 할수록 출판계 바깥 분야와의 협업이나 협력이 중요해질 텐데요. 전통적인 파트너로는 서점과 도서관이 있지요. 서점만 해도 온라인 서점이 있고, 이른바 독립서점도 있는데,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이 있으신가요?

“저희가 단행본 출판사의 결집체잖아요. 단행본은 99%가 서점을 통해 나갑니다. 특수서점이나 전문서점이 아닌 일반 서점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책이 단행본의 기본 개념이지요. 따라서 단행본 출판계는 서점과는 근본적으로 협력 관계일 수밖에 없어요. 도서정가제만 해도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지만 결국 제도가 안착되면서 서점과 출판사의 상생 기반이 마련됐잖아요. 다만 유통과 제조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나 공정 질서나 규칙과 관련해서 이해의 차이나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필요하면 새로운 자율협약을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적극적인 상생의 관계를 모색하는 쪽으로 갈 겁니다. 사실 크게 충돌할 일은 없어요. 도서관의 경우는 도서관 수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도서구입비나 사서 확충 예산이 너무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사서가 있어야 균형 있는 독서 환경과 도서관 문화가 만들어질 텐데 여전히 건물 짓고 행사 유치하는데 치중하는 감이 있습니다. 중기적으로는 일본 사례를 참고하면 어떨까 싶어요. 일본의 경우 1980년대까지 도서관을 늘리고 도서목록도 갖추고 사서 인력도 확충하면서 대중적인 지식 인프라에 큰 보탬이 됐어요. 그런데 도서관 문화가 너무 활성화되다 보니 주변 서점들이 사라졌어요. 1990년대에 이르면 소도시 서점들이 사라지고, 이것 때문에 출판생태계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또 일본은 자전거 문화가 발달돼 있다 보니, 다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빌려 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출판계와 서점계 입장에서는 도서관이 동반자가 아니라 적으로 변한 거죠.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의 일부 주립 도서관에서는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예컨대 기본 대여 횟수를 30회라고 하면 그 이상에 대해서 대여료를 적립해서 출판과 저작지원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만들어 출판생태계가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출판사, 서점, 도서관이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지식정보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가려면 이런 사례들을 연구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대책과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책이 공공재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서점에서 책을 다 읽고 그냥 나가도 뭐라 하는 직원이 없고, 저자나 출판사가 몇 년간 공들여 쓰고 펴낸 책을 도서관에서 달랑 두세 권을 구입해서 수백, 수천 명이 무료로 읽는 상황은 문제가 있습니다. 공공성이 저작과 출판의 활성화를 저해한다면 곤란하지요. 지식정보생태계의 원천인 저작과 출판의 환경이 무료 대여문화 때문에 빈곤해진다면 생태계 전체에 쓰나미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 문화가 중장기적으로도 생태계의 동반 성장에 기여하는 방안들을 마련해야 합니다.”

- 그게 지속가능한 공생 모델이겠지요.

“네. 가령 도서관에서 기본 대여 횟수를 정해 거기까지는 무료로 대여해주되 그 이상은 일정 금액을 저작출판지원기금으로 적립해 저작과 출판의 활성화에 기여 하는 선순환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요.”

- 온라인 서점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출판사와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요. 아까 역학 관계란 말씀도 하셨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플랫폼 파워 때문에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지요. 최근에 급부상한 회원제 구독(subscription) 방식에 대해서도 출판사들이 우려하는 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작년 말과 올해 초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월정제 문제는 이제 본격적인 논의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우선 이게 도서정가제에 맞는 건지부터 논의가 돼야겠지요. 그리고 향후 출판과 지식의 유통생태계에서 이런 방식의 접근이 적정한지, 유효한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플랫폼 중심의 관점과 이해에 기초해서 유용한 콘텐츠를 가능한 한 빨리, 많이 모으는 것을 목표로 출판사마다 제안을 달리하거나 조건도 일률적으로 몇 년간 구매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파행적인 제안과 거래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출판인회의 차원에서 조만간 실태를 파악해서 대책을 세우려고 합니다.”

- 그 점에서 IT나 기술 혁신은 출판계로서는 양날의 칼 같아요. 적극 대응해야 하는 부분임에 틀림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술의 영향력 자체가 확대되는 것에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죠. 종래의 정상적 유통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출판계로서는 좀 예의 주시하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일단은 개별적인 사업 활동들을 막을 순 없겠지만 합당한 질서와 규칙을 만들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 기술이 빠르게 주도하는 환경 변화가 기존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형국 같습니다.

“모든 새로운 것들이 그렇죠.”

- 그래서 말씀인데요, 법제도 측면에서 역점이나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우선 도서정가제가 있습니다. 3년 단위로 점검하게 돼 있는 이 제도가 올해 다시 평가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상황을 진단하고 지속과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한 현안입니다. 이제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후퇴할 수는 없다는 데 공감대가 폭넓게 자리 잡았다고 봅니다. 출판계뿐 아니라 서점, 저자, 독자들까지도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요. 이제는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서 전면적으로 자리 잡게 하는 법안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저작권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판면권 요구 같은 형태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잖아요. 저희 역시 출판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이 중요한 현안이라고 봅니다. 이 문제는 출판계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이고, 그 다음으로 디자인개발비와 도서제작비에 대한 세액 공제 문제가 있습니다. 조세특례제안법 개정에 관련된 내용인데요, 법 개정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 요즘 일자리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말씀하신 출판앱도 1차적인 용도가 구인구직이라고 하셨는데요, 출판계 사정은 어떤가요? 요즘 젊은 층에서는 출판계보다 다른 콘텐츠, 가령 영화나 드라마, 게임, 방송, 유튜브 쪽을 선호한다고도 합니다. SBI도 운영하시는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아까 SBI 얘기도 했지만, 정말 양질의 신규 인력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경쟁률이 7대 1, 8대 1 정도 됩니다. 지금 30대 초중반의 트렌드와 취향이 출판 직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 이유는 우선, 출판사의 주요 종사자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이잖아요. 출판사를 구성하는 이 세 가지 직종이 모두 문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창의성에 기초한 거죠. 그리고 대기업에 비하면 비교적 출퇴근도 자유롭고, 출판사 간 이동이나 이직도 자유롭고, 개인 사정에 따라 휴직이나 재취업도 용이한 편입니다. 또 회사가 마포, 연남동, 망원동 같은 이른바 30대들이 즐겨 찾는 곳에 몰려 있어요. 30대 초중반의 이해와 취향, 문화적 흐름과 출판계나 출판업종의 문화적 특성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세대가 출판계의 바뀐 환경에 오히려 빨리 적응하고 성과도 보이면서 출판계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 낙관적인 말씀이군요. 출판인회의 20주년 책자에 소개된 회원사 설문조사를 보니, 휴머니스트를 소개하는 문장으로 “5시 반에 칼퇴근한다.”가 적혀 있더군요. 과연 전체 출판업계를 상대로 물어보면 일반 직원들이 ‘우린 정말 좋아’라고 이야기할까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누린다고 생각할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휴머니스트 직원들에게 회사 만족도를 조사해도 ‘우린 정말 좋아”라고 답하는 직원은 거의 없을 겁니다. 회사 만족도란 사람마다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제 말은 풍속도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출판사와 출판업계의 문화가 10년 전과 달라졌고 5년 전과도 달라졌고 매년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들 스스로가 변화하고,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변화의 주체가 달라졌어요. 대표나 경영관리자가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새로 들어와서 현장의 중심에 진입하고 있는 20대, 30대, 40대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고 있는 거죠. 그 중심에 30대가 있어요. 여담이지만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공들여 결정하는 것 중 하나가 제목입니다. 대표든 주간이든 담당 편집자든 촉각을 세우고 안을 내놓고 치열하게 논의하지요. 저자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최근 3년 동안에는 휴머니스트에서 낸 300종 가까운 신간 중에 대표인 제가 제목에 개입한 책은 거의 없어요. 촉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예전에는 <대담>, <미학 오디세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처럼 우리 책은 제목이 분명했거든요. 그때는 제 촉이 유효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들어줄게요. 당신이 괜찮아질 때까지>,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 이런 식이에요. 제목의 촉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말씀하신 ’다섯시 반 칼퇴근‘도 직원이 쓴 겁니다. 실제로 휴머니스트에서 다섯시 반이면 5분 안에 거의 모든 직원이 퇴근합니다. 이 문화도 새로운 세대들이 스스로 만든 겁니다. 위로부터도 아래로부터도 아니고 자연스레.”

- 아까 말씀하신 세대 변화의 필연적인 결과이군요.

“그냥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바뀐 거예요. 출판에서 편집의 감각이 대단히 중요한 촉각인데 그게 달라진 거죠.”

- 그런 직원들을 위한 복지나 재교육 같은 사업 계획이나 구상은 있으신가요?

“출판인회의는 SBI를 통해 재직자와 예비자 교육에 필요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는 물론 총무, 회계, 경영까지 모든 과정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실전 교육 서비스의 환경이 갖추어진 셈입니다.”

- 활용도는 얼마나 되지요?

“높은 편입니다. 연간 누적 수강생이 600여 명이 넘고, 지금까지 수강한 종사자도 1만 명이 넘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절반 가까이는 SBI에서 무료 교육을 받은 셈이지요.”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 (사진촬영: 김원)

- 출판인회의 20주년 기념 책자에 실린 대담에서 ‘우리 사회도 정치에서 문화의 시대로 넘어왔고, 이제 질적 전환의 시대’라고 하셨더군요. 실제로 지식 확산과 대중화에 힘을 많이 쏟아오셨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양상에 대해 여러 매체를 통해 지식 문화가 확산되는 건 좋은데 예능화 경향이 보인다고 하셨지요.

“이제 민주화 이후 세대가 등장했고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 2단계로 접어들었잖아요. 이것은 문화적 깊이와 다양성 같은 것들로 뒷받침돼야만 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착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지요. 그런 점에서 지금은 정치적 격변기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격변기라고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문화의 전환이 이뤄져야 정치든 경제든 외교든 변화의 견실한 흐름이 만들어질 겁니다. 특히 일상에서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새로운 세대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봅니다. 80년대생들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나서 10대 때 대중문화를 경험한 첫 세대예요. 반면에 60년대인 저만 해도 집 안에서는 가부장문화에서, 집 밖에서는 독재문화의 환경에서 10대와 20대를 살았어요. 저항의 문화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부장과 독재로부터 배운 내재화된 주도 성향이 있어요. 이전 세대에 비해 열려 있는 듯하지만 주장과 자기 주도성이 강하고 정의를 가르치려는 계몽성이 강하지요. 어떻게 보면 반은 민주, 반은 독재인 셈이죠. 문화적 다양성을 체험했지만 체득하지는 못한 세대예요. 취미와 취향이 다양하지 못해요. 지금 30대는 열린 민주화 시대에 성장했고 10대부터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를 넘나들며 직접 보고 만나며 성장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 세대의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어떻게 확장되게 할 건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세대만 해도 30대에 회사에서 첫 해외 출장을 간 것이 첫 해외 나들이였어요. 가족과 친척들 모두의 뉴스이자 경사였지요. 저는 문화적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세대의 변화 양상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이런 흐름이 우리 사회 곳곳의 문화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책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언제나 다양성을 옹호해왔고, 쓰고 만들고 읽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의 개입이 가장 적극적인 매체니까요. 내가 선택하고 읽고 추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매체입니다. 요즘 공중파의 채널들을 보면 과연 이 시대의 문화적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 들지요. 지나치게 예능화 일변도로 가는 것 같아요. 예능화 흐름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건 의미가 없겠죠. 균형을 좀 잡았으면 합니다. 문화는 다양하고 두터워질수록 풍성해집니다. 새로운 주체들은 좀 더 다양하고 두터워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싶어 하는데 공중파를 포함한 기존 방송과 언론의 안테나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통 흥미 위주이지요.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할 게 아니라 시대 흐름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교양과 문화 프로그램의 지분과 개발은 공적인 차원에서 보장돼야 합니다. 공중파에서 책 프로그램 하나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잖아요.”

- 공중파마저 광고 수익을 위한 시청률에 좌우되는 구조가 주 원인일 텐데요. 그것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대중을 좌우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소셜미디어는 개인들이 주체가 되어 소통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건 대중 스스로 판단하도록 더 열어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SNS상에서는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 다양성과 두터움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어요. 수많은 주체들이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취향과 자기 선택에 따른 것이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규제라든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그냥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놔둬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공중파입니다. 공중파가 공중의 성격, 즉 공공의 성격과 역할을 포기한다면 공중파가 아니지요.”

- 최근 미국 쪽 논의를 보면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중립적인 게 아니라 그 나름의 어떤 알고리즘과 논리를 품고 있고, 이것이 개인의 선택지 자체도 숨겨진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강화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면도 있겠죠.”

- 그런 부분이 사실은 책이라는 매체와는 멀어지게 만드는 부분과도 연결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모바일상에서도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판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컨텐츠들이 다양하게 변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쪼갤 건 쪼개고, 필요하면 글을 말로도 변환하고, 다양하게 연결해서 제공하는 거지요. 출판사는 내러티브 팩토리입니다. 모바일상에서도 결국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담긴 새로운 내러티브를 원하는 거잖아요. 그것을 모바일상에서도 다양하게 제공해주고, 그 과정에서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가공하고 창작해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죠. 저작권이라는 걸로 막지만 말고, 다만 거기에 일정한 규칙은 제시해야겠지요. 7월쯤 출판앱을 출시한 후 8월쯤에는 브리핑을 할 기회를 만들겠지만, 11기 집행부가 출판앱에 이어 모바일 북콘텐츠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우리가 하드웨어 환경 면에서는 IT 강국인데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취약하잖아요. 소프트웨어의 원천 소스 중 핵심은 출판 콘텐츠에 있어요. 이 방대한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모바일 환경에서 새롭게 재구성해 새로운 세대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즐기고 재가공할 수 있게 해줄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학교와 교육도 출판계가 중시해야 할 부분인데요. 오래 관심을 보여 오셨지요. 출판인회의 차원에서 어떤 계획이나 구상이 있으신지요?

“늦은 감이 있지만, 우선 좀 더 새로운 형태의 시민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독서 과목의 신설을 제안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 초등학교 6년 동안 교육의 최종 목표가 뭔지 아세요? 대화 가능한 인간의 양성이에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배워 결국에는 나와 이웃과 세계와 소통하자는 거지요. 이 목표를 좀 더 확장하기 위해서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의 통합 교육이 필요한데, 거기에 독서와 토론만 한 게 없다는 게 선진국들의 공통된 연구 결과예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 기간 동안 매년 독서 과목을 필수로 정해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문과와 이과를 막론하고 통합기초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독서 과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출판계와 교육계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시범학교도 정하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비교 분석을 통해 효과도 검증하고 해서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갔으면 해요.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말 그대로 ‘대화 가능한 인간’에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공존 가능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독서 과목이 기여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21세기의 문화적 키워드는 공존이잖아요. 인간들 간에는 물론 자연과도 공존하는 지혜를 가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세계시민의 양성이 필요합니다.”

- 얼마 전에 인구학을 하는 교수 한 분과 이야기하는데, 우리 출판계가 국내 다문화 가정이라든가 외국인 노동자라든가, 탈북민, 조선족 같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역설적으로 자존감이 약해서 그래요. 자존감은 타인에 대한 배려하고 비례하거든요. 이전 세대는 우리를 강조하다 보니까 그 속에서 내가 실종되고 구체적인 타자가 실종된 거예요. 보편적 자아로서 나의 자존감을 알면 그만큼 타인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예전엔 한국인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나와 지구인이 하나로 이해되어야 해요. 그 안에 북한 어린이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도 있는 거지요. 어쨌든 그런 쪽의 교육을 위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출판계가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최근에 지자체에서 그런 독서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데가 좀 있죠?

“네, 희망적인 건 그런 부분이 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교육부하고 잘 안 되면 관심이 있는 지역 교육청이나 지자체 기관하고도 얘기를 해야죠. 예전엔 정부하고 얘기해서 안 되면 끝인데 지금은 그래도 지자체가 있으니까 희망이 있어요. 작지면 좋은 사례를 만들면 전파의 힘이 생기겠지요.”

한국출판인회의 김학원 회장 (사진촬영: 김원)

- 긴 시간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했는데요, 개인적인 질문 몇 가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출판인으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지요?

“이제 30년쯤 됐죠.”

- 후회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후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어려움도 없지 않지만... 해가 갈수록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후배들한테도 얘기하는데, 출판의 장점은 해가 갈수록 빛을 발한다는 거예요. 다루는 저자와 책의 종수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저자의 그 농축된 과정 전체를 읽게 되잖아요. 그저 완성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완성돼 나가는 과정을 보지요. 그것도 두 가지 텍스트를요. 저자가 만들어 낸 초고가 완성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저자의 어떤 변화 과정이랄지, 저작 활동 중의 인간의 변화 말이에요. 그것에 대한 면밀한 청취와 관찰은 또 관찰자를 변화시키거든요. 책을 만들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출판인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출판인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가장 창의적인 사람의 그런 과정을 사람과 원고를 통해 읽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체험하는 어떤 희열과 자기 변화의 과정이 있어요. 모든 원고가 다 다르잖아요. 똑같은 원고는 하나도 없어요. 영화만 해도 감독으로 치면 1년에 많아야 두 편인데, 책은 한 사람의 편집자가 다루는 게 연간 최소 4, 5종 정도는 되거든요. 제가 5년 동안 100종 정도를 다뤘다면 그 100종의 저작 과정마다 배우는 과정이 있죠. 그 과정은 철저히 1대1의 과정인데, 제가 <편집자란 무엇인가>에서도 썼지만, 3천 가지의 생각이 투입되어야 책이 나오거든요. 그러니 이 직업은 할수록 무르익고, 거기서 나오는 어떤 기쁨들이 있는 거죠. 나이가 들면 물러날 때가 되는 게 아니라 더 높은 경지에 이르지요. 출판인의 직업적인 삶 자체가 평생 학습의 과정입니다.”

- 지나오고 보니까 출판인에게 적합한 덕목 같은 게 이제는 보이시나요? 이런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글쎄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호기심인 것 같아요. 특히 내러티브에 대한 호기심. 저 사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그런 궁금증.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나도 이런 글을 써 봐야지, 하는 자극을 받으면 저자로 나서게 되는 반면, 어떻게 이런 책을 쓰고 만들게 됐지? 나도 이런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자극을 받으면 출판인이 되는 거지요. 저작과 저자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 경이로움. 그게 고갈되면 일을 접어야 해요.”

- 그러고 보면 출판인, 편집자란 직업도 참 독특합니다.

“아마 지금 편집자들이 한 3년만 파업하면 출판 종수는 3분의 1로 줄어들 거예요. 왜냐하면 책의 세계에서 독자들에게는 적절한 추천이 중요하다면, 저자들에게는 응원과 지원이 중요하거든요. 저자가 앞으로 나아가기 주저하고 힘들어할 때 '이 원고는 선생님밖에 쓸 수 없습니다'라고 독려하는 출판인의 응원이 책의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글쓰기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이 요구되거든요. 막상 현실에서는 쓰지 못하도록, 완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벌어집니다. 쓰다가도 막히고, 주저하고, 당장 해결해야할 바쁜 일들이 너무도 많으니 누군가가 곁에서 지원하고 응원해주지 않으면 시작도, 탈고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 좋은 책이 나오면 그저 읽는 독자들은 그런 내막을 잘 모르죠.

“모르죠. 예컨대 <유럽인 이야기> 3부작을 쓴 주경철 교수만 해 쓰기 전까지는 2년 동안 매주 연재 글을 쓰고, 이걸 다시 책으로 재구성해 3부작을 완성하고, 이걸 바탕으로 다시 1년 반 동안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편집자가 찾아가서 수없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연재를 제안해서 시작하고, 매주 마감하는 과정을 거치고, 다시 책으로 내고,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다시 책 가지고 방송하자고 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저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발견하고 담아내는 상호 교감과 호흡의 과정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지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정과 연대, 뭉클한 응원과 격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출판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 저자 자신도 미처 몰랐거나 조심스러웠던 부분을 일깨워주는 거군요.

“저자 자신은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선생님 이러지 말고 편지글로 한번 써보시죠, 하는 거죠. 저자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중에 발견한 건데, 실제로 놀라운 글이 나왔을 때 갖는 보람과 희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찰에서만 나오는 거지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저자의 잠재적인 장점과 매력, 그걸 집어내는 거죠.”

- 거기서도 사람에 대한 관찰이 중요하군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청취하고 읽고, 그러면서 그 사람만의 어떤 결, 호흡이나 숨결을 파악해야 해요. 그런 흐름이 나중에는 사실상 문체로 표현되지만, 문체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어떤 손짓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어떤 말투일 수도 있고, 호흡일 수도 있거든요.”

- 듣다보니 저자보다 편집자나 출판인이 더 섬세하고 예민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양쪽 다 예민하죠. 예민의 촉이 좀 다르겠죠. 저쪽은 정말 자기만의 고독한 과정을 상대하는 거니까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이쪽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기보다,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사람의 어떤 면을 발견하고 포착 해내는 거니까. 관찰을 하지만 개입을 해서는 안되고 지시를 하면 더더욱 안되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콩나물을 인터뷰하면 난 물 안 먹었다고 얘기하겠지요. 시루 밑으로 구멍이 나 있으니 물 주는 과정을 알아차릴 틈이 없어요. 그렇게 콩나물에 물 주듯 드러나지 않게 지원해야 해요. 저 물 줍니다, 하고 드러내면 저자의 저작과 창작의 내적 자존감이 훼손될 수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그림자의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자의 머리말이나 감사의 말에 이름이 명시되지 않아도 '이 책은 편집자가 아니었으면 나올 수 없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그 모든 힘든 과정을 녹일 수 있는 직업적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죠.”

- 지금 어떤 책을 쓰게 만들고픈 저자가 있습니까?

"책을 쓰게 만들고픈 저자는 수도 없이 많지요. 2001년 휴머니스트를 창업해 19년 동안 1800여 명의 저자와 12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1년에 1000종도 내고 싶어요. 현재 연 100종의 신간을 내는데 지금의 10배 정도를 발행하고 싶습니다.”

- 요즘도 직접 기획을 하세요?

“지금은 시대와 촉이 맞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저는 저자와 읽고 이야기하면서 방송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죠. 제가 팟캐스트를 3개 하고 있잖아요. 작가 없이 하는 방송이라 직접 책 읽고 정리하고 진행도 하니까, 읽어야 할 분량이 장난이 아니에요.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을 기초로 2년간 했고, 주경철 교수 모시고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도 1년 반을 했고, 지금은 논어 완독을 목표로 한 방송을 하고 있거든요. 네이버에서 ‘논어백독’이라고, 김원중 교수의 <논어>를 교재로 김 교수를 모시고 모두 500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350회 정도 했어요. 논어가 총 495편이잖아요. 올 11월이면 끝나는데 매일 오전 10시에 업데이트합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논어> 다섯 권의 판본을 놓고 비교해가며 읽으며 방송 준비를 합니다.”

- 아직 한참 더 활약하시겠지만, 30년 출판을 해오시면서 어떤 출판인이라고 자부하시겠습니까? 어떤 출판인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그런 건 별로 없습니다. 제 삶의 궤적이 출판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낸 책을 통해 이미 출판인으로서 저의 삶은 대중화, 사회화되어 왔습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출판인으로서 생을 마감하면 아마도 제가 그간 써왔던 수만 매의 편집일기, 출판일기가 어떤 식으로든 공개되겠지요. 그 속에 제가 어떤 출판인인지가 담겨 있을 겁니다.”

- 편집일기를 늘 쓰세요?

“네. 지금 저 책꽂이 위쪽에 꽂혀 있는데, 매년 책 한 권 분량입니다. 그냥 출판일기죠. 저자 만나서 얘기하고, 술 마시고, 책 만들며 쓴 일기들입니다. 썼다기보다 그냥 두들긴 거죠. 30년 동안 자판을 두들기며 기록한 겁니다. 책으로 치면 30권 분량의 일기가 쌓였어요.”

- 비망록 같은 겁니까?

“아니, 직원들과 다 돌려보죠. 1년에 천 매 정도 썼으니까, 지금은 거의 3만 매 정도 되겠네요. 뭐 제가 죽으면 밖에도 공개되겠죠. 이미 내부에선 공개했지만.”

- 늘 쓰는 습관을 들이셨군요.

“요즘은 단체장을 맡으면서 쓰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데, 생각 같아서는 출판일기처럼 단체장 일기도 매일 두들기고 싶어요. 그게 가능하다면 출판계 공익 근무의 질도 좋아질 것 같아요.”

- 읽기는 어떠신가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 특별히 인상 깊은 책이 있다면?

"업무 외에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보는 책은 요즘 변화하는 환경을 읽는데 필요한 책들입니다. 작년과 올해에 본 책 중에서는 <90년대생이 온다>가 대단히 경이로운 책이었어요. 그 전에 1년 반 정도 80년대생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어요. 지금 내고 있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지식실용 단행본 시리즈가 이들을 주독자층이자 필자층으로 한 건데,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에 책을 읽고 조사하고 토론을 했어요. 최근에는 90년대생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 책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저자인 임홍택 선생과 책을 낸 웨일북 출판사에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 그러고 보면 오늘 하신 말씀 행간에서 그 책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저자가 82년생인데 90년대생의 현실을 썼어요. 마침 제 두 아이가 94년생, 96년생인데 책을 읽고 나니 얘네들까지 좀 이해가 되더군요. 그전에는 아무리 애써도 아버지의 관점을 벗어던지기가 어려웠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아버지의 관점을 버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훨씬 더 그냥 인간으로 보이더라고요. 그 관점에서 보니 훨씬 더 배울 게 많아요. 저보다 훨씬 더 자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한테 돈 받는 것도 미안해 하고, 빨리 독립하고 싶어 하고, 저보다 소통력도 훨씬 좋고…”

- 오히려 배울 게 있단 말씀이죠.

“하나의 현실이니까. 그런 점에서 아주 놀라웠던 책입니다. 아울러 지금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책은 논어예요. 5개 판본을 비교하면서 보기 시작한 게 1년 반 정도 되거든요. 중국에서도 논어는 롤러코스터를 탔잖아요. 오랫동안 고전이었다가 마오 시대에 적폐의 상징물로 내몰렸다가 시진핑 시대에 다시 복권됐잖아요. 지금 저는 문화적 관점에서 읽고 있어요. 어떻게 2500년 전에 저런 변방의 조그만 동네에서 저런 문화적 다양성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 놀라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인간학의 고전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놀라운 지혜들을 얻을 수 있어요. 제자들과의 대화만 보더라도 상대의 개성과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런 맞춤형 대화가 불가능해요. 그런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인간 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훌륭한 텍스트인 것 같아요. 완독하고 나면 그 관점에서 논어를 재구성해볼까 하는 생각도 좀 있어요.”

- 사실 어떤 직책을 맡게 되면 그에 따른 업무가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책과 멀어지기 십상입니다. 시간도 그렇고 정신적 경황도 없지요. 그런 와중에도 치열하게 독서를 놓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저는 평범해요. 다만 저의 필요성 때문에 꾸준히 읽는 거죠. 어차피 계속 변하는 환경을 이해하려면, 내가 그 층들을 다 만날 수도 없고, 다행히 모든 것이 책으로 나오니까. 뭔가 궁금하거나 배우고 싶으면 일단 저의 습관은 책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대 이상으로 알려주거든요. 신기할 정도로. 제가 고민하는 모든 주제에 관해 책이 있어요. 한두 권이 아니라 수십 권이. 그 중에서 골라 읽지요. 다독가는 아닙니다.”

- 구글 검색은 안 하시고?

“우선 서점 검색을 제일 많이 하죠. 하루에도 일상적으로 수없이 둘러보며 체크합니다. 신간도 보고, 우리 책도 보면서, 서점을 통해 가장 최신의 것들을 집약해서 접할 수 있잖아요. 그게 너무나 깊고 넓지요. 만약 제가 <90년대생이 온다>를 안 읽고, 90년대생을 알려고 들었다면 어땠겠어요. 저자는 이미 수년간 현장에서 조사하고 공부한 것들을 책에 담아냈잖아요. 그걸 저는 4~5시간 만에 섭취한 거죠. 놀라운 일이죠.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인 것 같아요. 더 놀라운 건 그걸 읽는 과정에서 저 자신이 독자를 넘어 저자가 된다는 거예요. 제게 필요한 것들을 재구성하고 또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고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제 것이 되니까.”

- 읽기와 쓰기에 시간을 정해놓고 할애하십니까?

“그런 건 없고, 일단 쓰는 건 일상적으로 습관처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늘 곁에 노트북을 두고 메모하고 그러니까. 읽기와 쓰기를 그냥 실시간으로 하기 때문에 쓰는 시간, 읽는 시간이 따로 있진 않아요. 요즘 같으면 일요일 오전에는 항상 논어 공부를 한다, 뭐 이런 건 있어요. 그 다음 이때는 역사책을 본다는 정도? 집에서는 침대 옆에 작은 탁자가 있어서 거기엔 주로 전기, 평전을 두지요. 자기 전에는 잠이 잘 오는 걸 봐야 하잖아요. 주로 남의 삶의 이야기, 이런 걸 보다가 자죠. 서재에는 좀 더 무거운 책들. 거실 탁자 옆에는 주로 소설이나 좀 가벼운 것들. 그리고 회사에선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 많지요. 변화하는 현실을 파악하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눈여겨 볼만한 책들…”

- 끝으로 진흥원에 관계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블랙리스트 문제로 진통을 겪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매듭을 짓는 단계에 있긴 합니다. 그동안 경과를 어떻게 보셨고 또 앞으로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요. 세부적인 내용보다 큰 틀에서 말씀드리자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협력 상생, 그런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사유와 상상력과 지식 자체에 대한 견제와 탄압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사라졌잖아요. 물론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상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관련 단체와 기관도 이제는 공동의 이해와 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과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봅니다.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논의해서 출판계 자체를 더 다양하고 깊고 넓게 펼치는데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문화 현장입니다. 진흥원이나 출판 단체가 공히 현장 목소리를 더 청취해야 합니다. 자꾸 위로부터 뭔가를 만들 생각보다는 현장에서 나오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해줄 건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 우리는 문화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장려하고 독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화진흥의 경험은 좀 취약해요. 지금 정부나 기관, 단체를 이끄는 50대, 60대는 '문화가 없던' 시대에 자랐잖아요. 제가 보기엔 한 10년 정도 지나서 40대들이 행정도 하고 출판단체도 이끌고 하면 확실히 달라질 거에요. 풍속도나 판도가 달라질 텐데, 그전까지는 위로부터의 하향식이 아닌 일종의 ‘하방(下方)’의 정신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는 자세들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단체든 기관이든. 물론 아직도 현재의 문화 행정은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어요. 뭔가 눈으로, 수치로 보이는 행사를 기획해야 예산을 편성할 수 있으니 그걸 너무 비난만 해서도 안되고, 그 과정을 경과해야죠. 하지만 그런 것조차 가능하면 현장의 목소리들을 더 듣고 좀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하고, 그러려면 진흥원과 출판단체와 현장 사이에 이전보다 만나는 횟수가 더 많아져야 하고, 협력의 과정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사실 출판인회의의 설립 목적이 출판의 자유를 신장하고 출판 문화와 산업을 증진한다는 것에 있어요. 진흥원의 설립 취지와 같아요. 그러니 서로 가시적으로 뭔가를 했다고 내세우기보다는 자주 협력해서 주관하고 후원하고, 공동 주최하고, 그런 과정에서 소통성을 높여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도 이제는 진흥원에 이거 하라, 저거 하지 마라, 하기보다 출판 정보나 정책 연구,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안해서 이런 걸 좀 연구해달라, 이런 정보 좀 취합해달라고 할 겁니다. 국민 세금 쓰는 건데 이중으로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진흥원이 좀 더 주력해줬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역시 현장 목소리를 더 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출판산업의 진흥을 위해 업계 자체에서 하기 힘든 것들, 가령 지금 정책연구통계센터가 주력하려는 정책 연구나 통계 조사 이런 것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예를 들어 10개를 한다면 그 중 한 2~3개는 단체하고 같이 해서, 지금 필요한 것들을 같이 논의해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출판인회의에서 연구하고 조사하고 싶은 게 상당히 많은데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앞으로 이런 것들을 해달라고 제안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상생하고 협력하며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다보면 이전과는 좀 다른 양상들이 나타나겠죠.”

-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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