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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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책을 중매로 한 짝짓기

문항심(독일어 번역가) 독일어 번역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공부하고 대학도서관에서 일한 뒤 지금은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살면서 독일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소설 및 인문서 등 다양한 책을 번역했고 지금도 열심히 작업 중이다. 독일어권 작가들이 좀 더 재미있는 책을 많이 써서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쉬는 토요일 오전이다.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아이를 데리고 시내로 나간다. 혹시나 하고 프로그램을 검색해 보니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시간이 있는 날이다. 도서관에 들어가니 아이들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가 딱 낭독시간에 맞춰 온 듯하다. 우리 아이도 한 자리 차지하도록 하고 나는 잡지 코너로 가서 새로 나온 책들을 한가롭게 뒤진다. 곧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등장하고 유치원 또래의 아이들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2,3학년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20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에도 놀랄만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얌전히 앉아 듣는다. 물론 중간에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도 꼭 있긴 하다. 책 읽어주기가 끝나자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다들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며 책을 몇 권씩 빌린다.

독일 루드비히스부르크 시립도서관의 책 읽어주기 장면. 마침
영어책 읽어주기가 열리고 있다. 구연자는 시내 영어학원 원장님

이렇듯 독일의 동네 도서관에서는 지역이나 도서관의 규모를 막론하고 책 읽어주기 행사가 고정적으로 열린다. 전문 동화구연가가 책을 읽어주는 예는 거의 없다. 강사 초청비가 많이 든다면 넉넉지 않은 도서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다. 그냥 도서관 사서가 활약하거나 동네에서 책 잘 읽어주는 사람이 초청되는데, 듣는 아이들로서는 아무래도 괜찮다. 오히려 특별한 기술 없이 그냥 평범한 듯 읽어주는 편이 듣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훨씬 더 넓은 자유공간을 만들어준다. 이민자 자녀들을 위해서 각 주요 나라 말로 책 읽어주는 행사도 가끔 열린다. 부모의 모국어를 자녀들에게도 익숙하게 만들어줘야 오히려 그들이 독일어도 더 잘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다국어가 가능한 소중한 인력 자원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독서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축 중의 하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이 주로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널리 퍼지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이전보다 흐트러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트위터 버전으로 바꾼다고 상상해 보자.

로미오는 줄리엣을 좋아하고 줄리엣은 로미오를 좋아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가족은 상대방 가족과 원수지간이다. 둘은 사귈 수 없다. 그래도 서로 사랑한 두 사람은 자살한다.

이래가지고서는 세계 명작 대열에 낄 수가 없다. 책을 읽는 능력, 또 글자로 쓰인 것을 귀로 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시대에 돋보이게 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책 읽어주기 페스티벌’이 해마다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28일은 올해의 책 읽어주는 날이어서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알리고 싶은 단체나 개인은 vorlesetag.eu에 들어가서 몇 가지 사항을 입력하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읽어주는지 게시판에 등록된다. 오스트리아에서만 1,700개가 넘는 행사가 등록되었다. 홈페이지에 가면 수많은 단체나 개인들이 자랑스럽게 올려놓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책 읽어주기는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력이 좋지 않아 책 읽기를 멀리하게 된 노인들을 대상으로 양로원 등에서 책을 읽어드리기도 한다. 귀로 듣는 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독일어권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오디오북이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릴 때는 글을 빨리 못 읽으니까 귀로 듣고, 그 이후로는 한참 활자를 눈으로 읽다가 장년에 접어들어 시력이 저하되어 장시간 활자 읽기가 부담이 되면 다시 오디오북을 가까이 하는 그래프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어권의 노인들 중에는 다독, 아니 다청을 하는 분들이 많다.

유럽에서 독서의 계절은 가히 가을이 아니고 봄부터인 듯하다. 크리스마스 등 연말연시의 바쁜 일정이 끝나고 한숨 돌리는 초봄에는 부활절 방학도 있고 해서 사람들은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여행길에서 많이들 읽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2013년에 시작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독서 캠페인이 있다. 2013년에 독일 베를린의 마이리쉬 출판사로부터 시작된 ‘인디북 데이’에 참여하는 방법은 작은 독립출판사, 알려지지 않은 영세 출판사의 책을 각자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다. 멋진 카페나 싱그러운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책 표지 사진, 또는 얼굴에 자신이 있다면 책을 든 자신의 사진을 해시태그 #indiebookday와 함께 달아 소셜 미디어에 올려 스스로 참가 인증을 할 수 있다. 참가했다고 해서 무슨 경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나름 특별함이 있는 날에 참가했다는 인증사진은 뿌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과의 연대감도 형성한다. 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작고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중에 ‘앗! 이런 책이?’라는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책이 분명히 있다. 아니, 읽을 책을 찾으려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꽤 많이 마주친다. 2019년의 인디북 데이는 지난 3월 30일이었고 페이스북에서 ‘인디북 데이’를 찾으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읽은 독립출판사의 종이책이나 ebook을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이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브라질에도 알려졌고 이 날을 기념 삼아 여러 도서 관련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대체 어떤 출판사의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추천도서 목록이 마련되어 있고 더 나아가 한 달에 한 권 읽기 챌린지까지 준비되어 있다.

인디 북데이를 맞아 오스트리아 빈 시내에서 열리는 관련행사 광고 배너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지만 당장 책보다는 사랑에 더 목마른 남녀들도 있다. 이런 분들이라면 ‘그거 괜찮은 아이디언데?’라고 생각할 즉석 만남 행사가 있다. 머나먼 스위스에서 열리는 것이긴 하지만 소개해볼까 한다. 스위스의 한 데이트전문 소개업체가 스위스 출판산업 및 출판유통 협회의 협찬을 받아 여는 행사다. 지난 4월 말 스위스 취리히의 한 멋진 행사장(장소 이름은 Papiersaal, 옛날에는 우연히도 종이공장이었던 곳)을 빌려서 열린 이 즉석 소개팅의 중매쟁이는 책이다. 참가하고 싶은 남녀는 각자 책 한 권씩을 가져온다. 가져올 책 목록을 미리 주최 측에 등록하는데, 여성 측이 남성 측의 책 목록만 보고 만날 상대를 지정한다. 각자 7명의 이성을 만날 수 있다고 하며 서로 각 7분간 짧은 대화를 한 후 다음 상대로 넘어간다. 모든 만남이 끝난 후 다 같이 모여 뒤풀이를 하고, 지속적인 만남의 성사 여부는 후에 홈페이지에 로그인해서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참가비는 약 7만원 조금 못 되는, 어찌 보면 큰돈일 수도 있지만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 물가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음료수 값뿐만 아니라 참가비와 동일한 금액의 도서상품권까지 준다고 하니 정말 나쁘지 않다. 행사를 3주가량 앞둔 현재 역시 예상대로(?) 여성은 이미 참가신청이 만료되었다고 한다. 만일 내가 남자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꼭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를 알지 못해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단 한 두 권이라도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겸손한 두 귀만 가졌다면 평소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인기를 누릴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맘껏 활용할 것이다. 어서 우리나라에서도 누가 이런 행사를 좀 열어서 독서 좀 한다하는 처자들과 총각들이 책을 매개로 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위스 출판산업 및 출판유통 협회의 홈페이지에 나온 ‘스피드 데이팅’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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