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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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책 축제

최현미(문화일보 문화부 부장)

습관적으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우리의 생활이 비교적 단순해 계절이 오가는 자연 현상에 영향을 많이 받던 시절엔 그랬다. 도저히 집중이 불가능한 무더운 여름이 가고,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투명해지고,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젠 좀 정신 차리고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마음의 양식’을 쌓아보겠노라며 책을 펼쳤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 책을 펴게 하는 것은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여유와 시간이다. 모든 설문 조사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이 바로 ‘시간이 없고 바빠서’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을에는 오랜 관습과 달리 오히려 책 읽기가 더 어렵다. 학생들은 새 학기를 시작하고, 그 중요한 9월 모의고사가 치러지고, 직장인들이라면 휴가를 끝내고 돌아와 이제 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니, 책을 펴들 여유가 없다. 그러니 개인에게 ‘반짝 여유’가 주어지는 여름휴가 시즌이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시간이 된 지도 꽤 오래됐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푹푹 찌는 여름에도 휴가철엔 책 판매량이 오르는 것을 보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객관적인 통계수치보다 더 희망적인지도 모른다. 바쁜 한국인들의 일상이 조금만 더 여유를 찾는다면 책 읽기의 풍경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이유로 가을은 이제 독서의 계절은 아니지만 그 대신 책 축제의 계절이다. 현실과 다르게 9월이 독서의 달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남아있는 데다, 야외 활동을 하기에 좋은 시간까지 겹쳐 9월은 최고의 책 축제 시즌이 됐다. 이즈음이면 맥주도 야외 테라스에서 마셔야 제맛이듯, 책도 탁 트인 공간에서의 야외 독서가 꽤 어울리는 시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한 달 동안만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에서 책, 독서의 달과 관련해 여는 행사는 무려 7,755건이라고 한다. 1년 365일로 계산하면, 매일 20건 이상의 행사가 전국에선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마련한 ‘2018 책의 해’이어서 책 축제가 더 많다.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엄격한 시선을 거두고, 더욱 자유롭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책과 관련된 좋은 경험을 하고 즐거운 체험을 하는 책 축제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정부 차원의 행사부터 시, 도, 군, 구 단위까지 책 축제가 열리고, 전국에 1,000개가 넘는 공공도서관에서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책 축제, 책 행사가 열렸다. 여러 축제 중에서도 규모가 비교적 전국 규모이고, 시간이 거듭되면서 나름의 역사와 성과가 쌓인 축제를 중심으로 가을 책 축제를 정리해보겠다.


1) 2018 대한민국 독서대전

가을 책 축제의 문을 연 곳은 8월 31일에 시작해 9월 2일까지 3일간 이뤄진 ‘2018 대한민국 독서대전’이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문체부가 2014년부터 지자체 한 곳을 지정해, 예산을 지원해 열리는 대규모 책 축제이다. 2014년 군포를 시작으로, 인천, 강릉, 전주를 거쳐, 올해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열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김해시가 주관해 마련됐다.

행사 중 비가 내려, 장소를 옮겨 진행되기도 했으나 출판사 60여 곳, 출판·독서·도서관 단체 40여 곳 등 100여 곳의 단체가 참여했다. 특히 2018 책의 해를 계기로 함께 읽는 책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함께읽을래?’를 주제로 선정했다. ▲그림책 30년사를 정리한 특별전시,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 프로그램, 가야 문화유적지로 떠나는 문학여행 등 12개의 전시·낭독 프로그램, ▲ 독서동아리와 도서관이 진행하는 학술·토론 프로그램 6개, ▲ 공연·강연·행사 24개 등, 총 60여 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벌어졌다.

수동적인 책 읽기에서 벗어나 13명의 국내 유명작가와 책을 사이에 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란도란 독서대화’, 소설 원작이 있는 영화를 원작 작가와 함께 감상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작가랑 영화방’ 그리고 ‘문학 속 음악 콘서트’, ‘김이곤의 시 콘서트’, ‘동시가 살아있는 인문학 콘서트’ 등 작품 속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갖는 의미는 ‘프로그램과 노하우의 확산’으로 볼 수 있다. 지방자치의 시대지만, 문화는 여전히 서울 중심인 현실에서 매년 지자체 한 곳을 정해, 전국적 규모의 책 축제를 벌일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대규모 책 축제의 모델을 배우고,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독서대전의 성공은 그해 행사가 얼마나 잘 열렸는가가 아니라 그 도시, 그 지역에서 다음 해, 또 그다음 해 책 축제를 지속해서 만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올해 김해까지 다섯 번의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렸지만, 어떤 곳은 일회성으로 끝난 곳이 있는가 하면, 독서대전을 계기로 자체적인 책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도시가 2014년과 2017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했던 군포시와 전주시이다. 군포와 전주시는 올해 ‘군포 독서대전’(9월 8~9일)과 ‘전주 독서대전’(9월 14~16일)을 열었다.

예를 들어 전주의 경우,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호평을 받자 올해 예산 대부분을 시비로 충당했다. 지역 출판·서점·문화·교육계 등이 추진협의체 실무기획단에 참여해 만들어갔다. 전국 행사에서 전국의 출판·서점계가 모였다면, 올해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업체를 절반이 넘는 18곳이나 참여시켰다. 조선 4대 사고 중 임진왜란 중에도 보존한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성과 한글 고전소설 등 완판본의 출판역사를 지닌 전주의 특성을 살려 ‘기록과 기억’을 주제로 정했고, 한옥마을에 있는 한벽문화관, 완판본문화관, 전주향교에서 각각 책나눔 공간, 책문화 공간, 책 읽는 공간을 마련해 행사를 벌였다. 전국적 규모의 책 축제가 규모는 크지만 그 내용이 비슷비슷한 데 비해, 해를 거듭하면서 훨씬 지역의 스토리를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책 축제가 정착돼, 지속할 수 있으려면 지자체장 혹은 지자체의 책 축제를 만들어가는 담당자가 얼마나, 책에, 책 축제에, 독서에 관심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책 축제 또한 모든 것이 사람에 달려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보여준다. 어떻게 사람에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숙제를 안긴다.



2) 서울 북 페스티벌

서울광장에서는 서울시 최대 규모 책 축제인 ‘2018 서울 북 페스티벌(Seoul Book Festival)’이 9월 8일, 9일 양일간 열렸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도서관이 주관하는 서울 북 페스티벌은 도서관 중심으로 열리는 가장 큰 책 축제이다. 그런 만큼 2008년 시작할 당시에는 책 판매 중심 행사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서울광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시민의 도서관으로 만드는 콘셉트로 바꿔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서울도서관뿐 아니라 25개 자치구 공공도서관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만들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5개 자치구 공공도서관의 독서 진흥 담당 사서로 추진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매년 도서관 책 십진분류를 따라가며 주제를 정하는데, 올해는 700번(언어), 800번(문학)의 해이다. 주최 측은 서울 엠보팅(시민 온라인 모바일 설문조사)을 통해 700번과 800번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말과 글’로 정했다. 광장에서 독서를 즐기는 체험을 통해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일상적 행위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롭게 되짚어 보자는 취지이다.

도서관이 주관하는 책 축제인 만큼 상징적 프로그램이라면 ‘축제도서관’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엄선한 책으로 야외 ‘축제도서관’을 마련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열람하는 것은 물론 대출과 당일 반납도 가능토록 했다. ‘쓰기 무대’에서는 작가와의 대담, 북 콘서트 등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아봤고, ‘읽기 무대’는 낭독의 매력을 보여주는 다양한 낭독 무대로 만들어졌다. ‘듣기 존’에서는 말과 글을 주제로 랩, 판소리, 마임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다. ‘말하기 존’에서는 함께 말하고, 쓰고, 읽고 만드는 복합체험공간을 조성해 시 쓰기 체험 ‘시 필사’, 훈민정음 언해본 인쇄 체험 ‘한글의 탄생’, ‘나만의 독서연필 만들기’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달빛독서’였다. 제목 그대로, 어둔 밤, 달빛 아래, 램프를 켜고 책을 읽는 시간이다. 사이사이 한쪽에서 공연도 하고, 낭독도 이뤄졌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어쩌면 디지털 시대이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한 저녁,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이런저런 필요 없는 물질적 정신적 소음을 차단하고, 책을 읽는, 그런 시간을 일상의 로망이 됐음을 보여준다. 물론 책 읽는 시간이 한차례 체험하는 일회성으로 소비되지만, 이 한 번의 시간, 혹은 그 시간에 읽은 한 권의 책이 그 사람과 그 이전과 다르게 바꿔 놓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책의 힘이다.


3) 파주 북소리 축제

파주 북소리 축제도, 한국의 대표적인 책 축제이다. 경기도 파주시와 출판도시 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한다. 파주하면, 한국의 주요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출판단지가 있는 곳이다. 공식 행사 이외에, 출판단지에 입주한 출판사들이 개별적으로 마련하는 아기자기한 행사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는 파주시 출판도시에서 평화를 주제로 열렸다. ‘통일의 중심도시 파주에서 평화의 소리를 울린다’는 의미의 타악기 개막공연과 행렬, 동시대의 평화문학 이야기, 평화문학포럼, 남북 주민의 삶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는 평화 영화제, 한 조각의 평화 전시회 등이다. 책·사진·영상을 매개로 북한의 과거와 현재, 남북평화의 염원을 표현한 작품 등을 소개하는 전시도 준비됐다. 축제의 간판 프로그램인 ‘작가와의 만남’, ‘낭독공연’에는 김경집, 김애란, 김연수, 김용택, 김중혁, 김탁환, 김현, 박준, 서민, 손아람, 손원평, 은희경, 전성태, 정석주, 천명관 작가가 참여했다. 유명 출판사의 사옥을 둘러보고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프로그램에는 한길사, 사계절, 문학동네, 태학사, 군자출판사가 함께 했다.


3) 독립서점들의 북 페스티벌

광주의 ‘오늘산책’(today.buy.book)은 전국 규모의 축제가 아니고, 일정한 역사를 쌓은 축제는 아니다. 하지만 책 축제계의 신인으로, 새 등장인물이 그렇듯 여러 면에서 상당히 주목할 책 축제이다. 무엇보다 이 축제의 의미는 자발성이다. 광주의 독립서점들이 함께 모여 2016년부터 마련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전북의 독립서점, 독립출판 작가·제작자가 참여하는 북마켓, 책을 주제로 한 전시, 음악 공연, 강연 프로그램들이 마련된다. 광주를 기반으로 출판-서점-독자를 연결하고 책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기획을 도모하기 위해 광주의 독립서점 5곳(파종모종, 라이트라이프, 공백, 연지책방, 책과생활)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단체 오늘산책(대표 양지애)이 주관한다.

<그림 2> 라이프러리 제주 보도용 사진_낮(책의 해 조직위원회)

<그림 3> 라이프러리 제주 보도용 사진_밤(책의 해 조직위원회)



4) 그리고 책의 해

올해는 책의 해로, 일 년 내내 다양한 책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라이프러리는 선물세트처럼, 책 관련된 여러 행사가 한 세트처럼, 매우 집약적으로 진행되는 책 축제이다. ‘라이프러리(Lifrary)’는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의 합성어로 책이 있다면 일상의 곳곳이 거대한 도서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문체부가 주최하고, 네이버, 네이버 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로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책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독서 문화 공간’이다.

독서의 달에 라이프러리는 제주 협재해수욕장을 찾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라이프러리 휴게존’은 라이프러리 공간에 마련된 다양한 책들을 빌려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라이프러리 서고에서는 4,000여 권의 다양하고 유익한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북그라운드는 어린이들이 책과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도록 마련한 ‘책 소재의 놀이 공간’이고, 라이프러리 공간에 설치되는 이동식 스튜디오인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책과 관련된 주제의 팟캐스트 방송이 라이브로 진행됐다. 스타의 취향이 반영된 ‘북 리스트&책장’인 셀레브리티의 책장과 미니 콘서트, 플리마켓 등도 열렸다. 책과 맥주의 만남을 내걸고, 동네책방 플리마켓, 캣왕성 유랑책방 책 구입자에게는 시원한 맥주가 제공되기도 했다. 캣왕성 유랑책방은 다섯 마리 우주고양이가 지구를 떠돌며 소개하는 ‘캣왕성 금서 목록’ 300권이 깜찍한 트럭을 타고 찾아가는 이동 북 트럭이다.

곳곳에서 열린 책 축제는 모든 축제가 그렇듯, 독자들, 시민들의 참여로 완성된다. 그 완성의 결말은 독자들이 축제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얻어가, 그것이 자기 일상 속에서 작은 힘을 발휘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다시 책을 펼칠 수 있게 할 때 해피 엔딩이 된다. 한국의 책 축제가 더욱 내실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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