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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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백세가 읽고 쓰는 아라한 시대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를 전공. 2007년 출판사 쿠온을 설립. 사무소 이전에 따라 2015년 7월 7일 칸다 진보초에 한국어 원서 책, 한국 관련 책 전문 북카페 ‘CHEKCCORI(책거리)’를 오픈했다. 현재 쿠온출판사를 통해 한국 문화와 문학 관련 도서들을 출판하며, 북카페에서는 연 120회 이상의 한국 문화 이벤트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말이란 늘 만들어지고 없어지고 한다. ‘아라한’(アラハン)이라는 말은 최근에 일본에서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100세 전후의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Around Hundred’를 일본식으로 줄인 말로, 고령화 세대를 이렇게 부르는데 100세 전후 작가의 책을 지칭하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 고령자 문화, 고령자를 타깃으로 한 상품들은 이미 일본에서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의 고령화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단카이 세대(団塊世代)를 알 필요가 있다. 단카이 세대란 1947년-194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이 2007년 정년퇴직을 함으로써 생겨나는 소비와 저축의 변화, 새로운 일자리의 모색 등 여러 현상이 줄을 이었다. 또 2015년부터는 이들이 65세가 되면서 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이 되어 또다시 일본 내 소비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이 단카이 세대의 특징은 경쟁이다. 그들이 살아낸 시대 자체도 경제발전을 중시한 경쟁 구도를 이뤘듯이, 같은 세대에 인구수가 많은 것부터가 태어나면서부터 생존 경쟁을 치열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세대다. 그래서 이들은 상당히 헝그리 정신이 강하다. 또 직접 실토하지 않으면 나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젊어 보인다. 학력도 높은 편이다.

출판계에서도 이런 고령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문학 속 주인공들만 고령자인 게 아니라 그런 문학을 만들어 내는 주체, 작가들의 연령대도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소비하는 주체 역시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일본 문학상 중에 한국의 ‘이상 문학상’에 준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芥川龍之介賞)” (통칭 “아쿠타가와 상”으로 1935년 제정. 신인에게 주는 상. 상금 100만엔)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화제가 될 정도다. 이 상의 수상작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읽힐 정도로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도 높다. 2013년 75세에 이 상을 수상한 쿠로다 나쓰코(黒田夏子) 역시 중학교 국어교사를 정년퇴임하고 여러 사무직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후 소설 쓰기에 매진한 끝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녀의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작가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고 당당하다.” 당당하다는 그녀의 말에 나이 어린 사람들도 박수를 보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자여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 당당하다고 한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2017년 63세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와카다케 치카코(若竹千佐子)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는 55세 때부터 소설을 배워 8년 동안 한 작품을 써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산다> 정수연 번역, 토마토출판사) 결혼식을 앞둔 24살 모모코가 시골인 고향집을 뛰쳐나와 도쿄에서 살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사랑하고 의지하던 남편을 여읜 뒤 다시 혼자서 사는 이야기이다. 모모코의 인생 스토리와 함께 혼자 살면서 찾아낸 하염없는 자유, 그리고 그녀 머릿속에 여러 사람이 등장해서 약간 소란스런 고독이 소설 속에 흐른다. 74세의 주인공 여성이 타자에게 소유되지 않은, 타자에게 소속됨을 벗어나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그러면서도 서서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힘으로 획득해가는 해방감에 독자들도 함께 24세의 모모코에서 자연스럽게 74세의 모모코가 되어간다.

와카다케 치사코씨의 첫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와카다케 치사코의 이 소설은 아쿠타카와상 만이 아니라 일본 내 여러 문학상을 섭렵했는데, 그녀의 소설을 두고 ‘玄冬小説(현동소설)’ 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청춘소설이라는 말이 있듯이(중국의 오행사상에서 봄은 청(靑)에 해당되며, 여름은 적(赤), 가을은 백(白), 겨울은 현(玄)에 해당. 이에 각 계절은 청춘(靑春), 주하(朱夏), 백추(白秋), 현동(玄冬)이라는 말로 각 계절을 나타내는 말) 쓴 맛 단 맛을 다 본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뜻에서 이 현동소설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시바타 토요의 시집 <약해지지 마>와 100새를 기념하여 낸 두 번째 시집 <100세>

소설만이 아니다. 고령자 시인도 있다. 역시 한국에서도 번역이 된 시바타 도요(柴田トヨ)도 93세에 시로 데뷔했다. 일본에서는 이 시집이 160만부가 팔렸고 시바타 씨의 일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시바타는 102세 때 돌아가셨다).

일본은 장수 국가다. 당연히 소설가도 시인도 편집자도 백발 고령에도 현장에서 현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소설을 쓰고 시를 써 온 이들이 아니라 나이 들어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상을 받고 인정을 받은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 없는 감각이 이들이 쓴 작품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의 작품, 나이든 작가든 나이든 주인공이 나온 작품이든, 이들과 같은 세대의 독자들이 구매자가 되는 구조여서 출판계가 그나마 돌아가는 구조가 된다. 단카이 세대 즉, 60, 70대가 표현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 독자가 되는 셈이다. 일본에는 이 세대 작가의 책을 사서 읽는 60대, 70대가 있다는 사실이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현동소설은 일본에서 앞으로도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아라한’이란 말도 덩달아 장수할 게 틀림없다.

시바타 토요 씨 일생을 그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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