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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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런던도서전, 환호 속의 아쉬움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한국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한국출판저작물을 아시아, 미주, 유럽 등 전 세계 출판시장으로 수출해오고 있는 에이전시인 KL매니지먼트 대표이다. 저서로는 <소설파는 남자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있다.

런던 도서전 (이미지 출처: 저자)

올해 런던 도서전은 작년보다 한 달 앞선 3월에 열렸다. 48회째를 맞아 12일부터 사흘간 런던시내 ‘올림피아 런던(Olympia London)’에서 진행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전시장 규모는 물론, 참여하는 국가와 출판사 또한 양적으로 질적으로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세계 최대 규모 도서전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넘어설 기세다. 미국의 북엑스포 아메리카(BEA)가 지난 20년 가까이 번역 판권과 IP 세일즈 거점 도서전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약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런던 도서전이 꾸준히 커져 이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맞먹는 위상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각국에서 영화 및 TV 판권 담당자, 출판사 편집자, 저작권 에이전트를 비롯해 다양한 출판 및 문화 전문가들이 이곳을 찾는다.
일본은 처음으로 이번에 특별전시관(pavilion)을 마련해 자국 출판문화 콘텐츠 홍보에 정성을 쏟았고, 중국과 싱가포르는 물론 터키 등도 큰 규모의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다양한 출판콘텐츠를 선보였다. 우크라이나도 올해 처음 참가하면서 세계 출판인을 대상으로 자국도서 홍보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2017년도 주빈국이었던 폴란드와 2018년 주빈국이었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국가들도 각각 주빈국으로 참여할 때 자리 잡았던 곳에 비슷한 규모의 전시공간을 그대로 마련하고 유명 저자를 필두로 다양한 자국 저자들 책들을 선보이며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런던 도서전 (이미지 출처: 저자)

올해 주빈국은 인도네시아였다. 우선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주빈국과도 차별성 있는 개성 있는 인테리어로 장식한 전시공간이 눈에 띄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분야의 전시 도서들도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근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주빈국으로 참여한 바 있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국가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홍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에서 진행되는 인도네시아 도서전에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대외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동남아 출판시장에서 태국, 베트남과 함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실효를 거둘지 주목된다.

이번 런던도서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작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세계 각국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들은 도서전이 열리기 전 일정 기간 자사가 보유한 유력 작가 및 타이틀의 프로모션 마케팅을 적극 펼친다. 이어 도서전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나아가 누군가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 본격적 조건 협상에 나선다. 이번에도 고무적인 사례들이 많았다.

최은영의 단편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가 그 중 하나다. 단편소설집이 도서전 현장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분명 이례적 현상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이나,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집만 해도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는 세계 출판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지 않았고, 국내에서 또한 판권 판매가 쉽지 않았던 과거 경험을 떠올린다면, 국내 작가의 단편소설집 번역판권에 대한 구매 관심은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 문학 및 한국 출판시장에 또 하나의 청신호에 해당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쇼코의 미소>의 영어 판권이 미국의 펭귄북스(Penguin Books)로 팔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단편집은 도서전 기간 중 이탈리아의 하퍼콜린스(HarperCollins Italy)와도 협상 끝에 판권 판매를 성사시켰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특히 영미유럽시장에서 어느 나라든 단편소설집의 번역판권 거래는 쉽지 않으며 흔치도 않은 게 현실이다. 번역이나 출판 지원이 일정 수준 가시화된 시점에서 판권 계약이 진행되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그전에 유력 출판사 편집자가 원고 검토 후 진행되는 예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이번 도서전에서 영미유럽으로 판권 거래가 성사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소설집은 지금까지 미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일본, 대만,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도 판권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확인됐다.

런던 도서전 책자 (이미지 출처: 저자)

이번 런던 도서전에서 관심을 모은 또 다른 작가는 손원평이다. 그의 장편소설 <아몬드>(창비)의 번역판권은 영미 유럽 주요 국가를 비롯, 전 세계 12개국으로의 수출을 마쳤다. 미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을 비롯해, 이스라엘, 일본, 중국,·대만, 태국까지 아우르는 고른 진출이다. 신인작가의 장편소설이 출간 2년 만에 이처럼 10개국이 넘는 국가에 불과 3개월여에 걸친 짧은 기간 중 동시 수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특히 본격 성인대상 소설이 아닌 ‘영어덜트(YA) 소설’ 분야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낸 성과로도 평가된다. 영어판권은 영미권 최대 출판그룹 중 하나로, 전 세계 17개국에 지사를 둔 하퍼콜린스(HarperCollins)다. 이 책은 그룹 내 새롭게 출범한 임프린트 하퍼비아(HarperVIA)에 팔렸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를 담은 영어덜트(YA) 소설로서, 2017년 출간된 뒤 2019년 3월말 현재 국내에서만 25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아몬드>의 영어판권이 미국의 하퍼콜린스로 팔렸다는 소식은 세계적인 유명 출판전문지 퍼블리셔스위클리(PW)가 런던 도서전 기간 중 현장소식을 발 빠르게 담아 데일리로 무료 제작 배포하는 <PW 런던 쇼 데일리>에 게재됐으며, 이 소설을 낼 출판사와 소속 편집자들 대한 소개도 함께 실렸다. 한편 도서전 첫날인 12일 오후 5시에는 하퍼콜린스 부스에 마련된 리셉션 행사에 미국의 <아몬드> 담당 편집자, 이탈리아 담당 편집자, 한국 출판사인 창비의 관계자와 필자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계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자리한 가운데 상호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출판이 2019 런던 도서전 비즈니스 현장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최은영과 손원평으로 화제가 된 런던 도서전이 끝난 후 또 다른 작가가 관심 대상의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바로 올해 이상 문학상 수장작가로 선정된 윤이형 작가다. 도서전 현장에서 소개된 그의 청소년대상 소설 <졸업>(내인생의책)에 대한 검토 피드백이 나오면서 한 달 사이에 태국과 대만으로 판권이 팔렸다. 한편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정호승의 <연인>(열림원), 장민혜의 미스터리 스릴러 <곤충>(고즈넉이엔티), 조선희 장편소설 <세 여자>(한겨레출판) 등, 이 외에도 다양한 책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그 뒤로도 많은 이들이 현재 각 작품들을 검토하고 있어서 기대가 크다. 이처럼 영미유럽을 포함한 세계 출판시장에서 한국문학과 한국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작 가장 유효하며 유력한 도서전 중 하나인 런던 도서전에 한국관은 없었다. 아쉬움이 컸다. 2014년에 주빈국으로 참여했으며, 세계출판시장에서 출판 규모 10위권에 속한 한국출판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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