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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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은 흉이 아니다 _임상의 의미를 되묻는 책에 대한 단상

김신식(감정사회학 연구자)

임상을 한자로 풀면 臨(임할 임)에 床(평상 상)을 쓴다. 알다시피 임상은 병을 치료하거나 병의 예방을 연구하고자 실제로 환자를 접하는 행위를 뜻한다. 臨에 다스리다와 통치하다는 뜻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임상은 평상시 의사의 할 일에 비중을 둔 의학용어다. 한데 요즘 임상의 의미를 되묻는 책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해당 서적은 전문성을 기준 삼은 의사와 환자의 수직적 관계에서 비롯된 처방 대신 수평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치료적 대화’를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울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있다. 우울증을 통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서적을 논하려면 정신분석학이 신경 써온 점을 잠시 챙길 필요가 있다. 물론 오늘날 정신과 의사들이 프로이트나 라캉의 이론을 곧이곧대로 치료에 적용한다고 볼 순 없음을 염두에 두면서.

자크 라캉은 증상을 분석하는 사람(분석가)과 증상을 치료받으러 온 사람(분석주체)의 관계 설정을 중시했던 인물이다. 특히 라캉은 주장한다. 진단 과정에서 분석주체는 분석가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인간임을 발견하려는 신경전을 벌인다고. 분석주체가 신경전에서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캉의 충실한 해설자였던 브루스 핑크는 분석주체가 자신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분석가에게 덧씌운다고 설명한 바 있다. 속된 말로 그때부터 분석가의 페이스는 말리는 것이다.

정신분석에 깊은 관심을 보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분석가와 분석주체 간의 은근한 실랑이를 자주 재현해왔다. 베리만 감독의 관련작부터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배드 타이밍>(1980), 필 조아누 감독의 <최종분석>(1992),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2004) 등은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다. 브루스 핑크의 설명에 의하면 심리치료사나 정신분석학자, 심리학자를 그려온 영화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분석가는 늘 고독하고 상처받은 존재로 나온다. → 분석가는 분석주체인 환자의 성적 매력에 빠진다. → 분석가는 자신의 힘을 남용해 환자와 연인 사이가 되고 섹스를 한다.

오랜만에 언급한 작품을 다시 봤다. 환자의 심리를 조종하며 사랑을 나눈 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입장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읽던 중인 전지현의『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팩토리나인, 2018)에서 우울증 환자인 저자가 정신과 의사 한 명 한 명을 품평하듯 이야기하는 대목이 유독 떠올랐기 때문일까. 8년 넘게 우울증을 치료해온 저자는 마냥 의사의 말에 기대지 않는다. ‘후기’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우울증 환자이면서 의료서비스의 구매자이기도 한 저자는 소비자 정신에 입각해 우울증을 둔감하게 살피는 의사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반대로 통상적인 진료 절차 너머 환자가 처한 형편을 듣고 일상적인 접점을 모색하는 의사에겐 신뢰를 보낸다.

정신과 치료에서 의사와 환자가 생활상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법칙에 갇히지 않는 대화는 김동영·김병수의 『당신이라는 안정제』(달, 2015)가 잘 보여준 바 있다. 서면으로 이뤄진 교신 형태이나, 김동영의 우울증을 치료해온 김병수는 자신의 환자에 관한 정보를 상당량 품은 글을 선보인다. 두 저자는 이 점을 의식하면서도 우울증을 통해 고통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지난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018, 흔)는 환자가 그려놓은 대화의 틀 안에서 의사의 언어를 인용한 논픽션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쪽 분량이지만 저자의 담당의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책이 꽤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담당의는 치료자로서 실수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는데, 정신 치료의 역사에서 분석가이자 치료자는 간혹 환자의 실수에서 실마리를 찾아왔다는 점을 착안할 때 나는 이 대목을 정신과의사의 선한 성품을 확인하는 글로 읽지 않았다. 독자 입장에선 환자였던 저자의 역공이 낳은 전개로 보였다(물론 조심스러운 추론이다).

무엇보다『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속 환자와 의사의 대화엔 감정의 애매성에서 야기된 우울감·우울증의 애매함을 어떻게 볼지 자세히 나온다. 저자는 우울증의 한 유형인 기분부전장애에 시달려왔는데, 주변인들은 저자가 우울증 환자다운 분명한 표식을 나타내길 바란다. 저자의 주변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렇다. 우울증에 시달려온 사람들의 독립출판물 『아무것도 할 수 있는』(warm gray and blue, 2016)을 보면, 우울증은 실체가 없는 병이며, 정체모를 아픔을 두고 유난을 떠는 사람들의 퍼포먼스이자, 냉소와 자학,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관한 변명거리로 취급당한다. 백세희는 우울증에 걸렸다면 선명한 어둠을 유지하라는 주변의 질타에 맞서 자신을 에워싼 애매함을 긍정하는 방향을 택한다. 이를테면 저자에게 ‘그냥’ 우울하다는 것은 속된 말로 팔자 좋은 고백이 아니다. 그냥 우울하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을 애매함에 가둬두는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더 괴로워하고, ‘그냥 우울함’의 심각성을 더 과감히 이야기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애매함의 역습’이라 이름 붙인다면, 그녀가 선보이는 애매함의 역습은 우울증과 우울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는 시도와 결별한다. 백세희는 애매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풍부한, 그러면서도 예민함을 잃지 않으려는 치료적 서사를 치료받는 자의 시선에서 몸소 선보인다.

즉 출판사를 다니며 상대했던 작가들, 인상적인 예술 취향으로 삶을 향유하는 이들에 비해 왜 자신은 애매한 사람인가 스트레스를 받아온 저자는 우울의 애매성을 조망하고자 의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선 그 대화를 자신이 구상한 전개 아래 공유한다. 어쩌면『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 우울증과 우울감에 관한 치료는 대화 내용이 아니라 대화를 에워싼 서사의 짜임새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정리하자면『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당신이라는 안정제』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를 위시한 우울증을 이야기하는 일련의 에세이들은 독자에게 이같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임상은 의사만의 전유물이냐고. 국내에도 출간된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몸의 증언』(최은경 옮김, 갈무리, 2013)에서 보듯 임상은 환자의 서사와 의사의 서사가 만나 복잡한 의미를 띠는 자리다.

한동안 아니 여전히 ‘어떤 것’으로 치부되면서, 검은 태양에 비유되어온 우울증. 이 양가적이고도 모호한 감정의 상황에 대해 의사도 우울증을 동력으로 삼아온 예술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심한 서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자신을 비난한 사람들이 내세운 애매함이라는 삶의 요인이 선물로 돌아옴을 느끼면서. 덕분에 당신과 나도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애매함은 흉이 아니다.

사진 1 _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흔출판사)


사진 2 _ 「아픈 몸을 살다」(아서 프랭크, 봄날의 책)


사진 3 _ 「당신이라는 안정제」(김동영/김병수, 달출판사)


사진 4 _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전지현,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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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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