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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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알파, 책 그 이상의 책들

표정훈(출판평론가, 번역가)

책의 확장성‧융합성이 강화되는 새로운 추세

책은 대표적인 올드 미디어(old media)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형태나 재질, 제작 방법, 사회적 의미, 유통 방식, 관련 제도 등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오긴 했지만 책 그 자체는 고대의 점토판 시대로부터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책은 다른 매체 영역으로 확장을 꾀하거나 다른 매체와 융합되기보다는 책 자체의 고유한 성질을 보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했던 책이 최근에는 확장성과 융합성을 갖추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책은 이제 ‘책 그 이상의 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까.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배경은 디지털‧온라인‧모바일 등의 말로 대표되는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다.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혁명 또는 정보통신 혁명의 물결에 책도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콘텐츠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게 된 현실도 책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원소스멀티유스(OSMU)에서 책이 소스가 되거나 다른 소스가 책이 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원소스멀티유스는 하나의 원형 콘텐츠를 영화,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출판 등 다양한 분야로 변용하는 것이다. 아주 쉬운 예로는 책 내용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캐릭터 상품이 있다.


VR(가상현실)로 펼쳐지는 책 세상, ‘Operation You’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첫째,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VR(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책이 있다. 대표적으로 (주)브이알이지이노베이션(VREZ INNOVATION)이 미국 벤처기업 퀀텀스토리컴퍼니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여 출시한 VR북, <Operation You>가 있다. 글자를 읽고 그림을 보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책 내용이 가상현실로 눈앞에 펼쳐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방식은 VR북 전용 앱과 뷰어를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책을 비추면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책 페이지의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Operation You>의 내용은 초등학생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담은 창작 동화다. 제1권 ‘Morning nightmare’가 출시되어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초부터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향후 3년간 30편이 출시될 예정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가전 쇼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올해의 아이폰 라이프 부문 수상(‘iPhone Life’s Best of CES 2018 Winners)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전체 출판산업에서 디지털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은 약 25%, 일본은 약 14%에 달하며 증가 추세가 빠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디지털 출판의 시장 점유율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 기존 출판 콘텐츠와 디지털 콘텐츠가 연계되는 경우도 아직까지 많지 않은 편이다.

사진 1 _ (주)VREZ INNOVATION (출처 : 필자 제공)


SNS‧메시지로 들어온 책, 훅트

두 번째로 채팅 스타일의 새로운 스토리 플랫폼 훅트(Hooked)가 있다. 이 앱은 SNS‧메시지 앱의 형태로 스토리, 이야기를 공유한다. 구글이 가장 뛰어난 안드로이드 앱을 선정하기 위해 해마다 시행하는 구글 플레이 어워즈(Google Play Awards)에서 2017년도 ‘뛰어난 스타트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앱 개발업체 텔레파식(Telepathic)이 2015년에 개발했으며, 기성 작가의 작품이나 자가 출판이 모두 가능하다. 누구나 플랫폼에 이야기를 등록할 수 있고, 이야기에 간단한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표시할 수 있다. 이야기를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 핵심. 5~10분 안에 읽을 수 있는 매우 짧은 형식이며, 1천 개 안팎의 영어 단어로 이야기를 공유한다. 모바일‧SNS 환경에 친숙한 세대에게 틈새 독서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개발사 자체 조사에 따르면 모바일 전자책 완독률이 35% 정도였으나 같은 내용을 메시지 형태로 읽으면 완독률이 85%에 달하였다. 이 플랫폼은 기성 작가나 출판사가 신작,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환경에서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축약된 내용을 제공함으로써 작품 및 작가의 인지도를 높이고 홍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플랫폼에서 공유되며 인기를 모은 콘텐츠가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사례도 가능할 것이다.

사진 2 _ 스토리 플랫폼 훅트(Hooked)(출처 : http://www.hooked.co)


종이책과 전자책의 상호 확장, 파페고

세 번째로 종이책을 디지털로 읽게 해주는 서비스 파페고(papego)가 있다. 종이책‧전자책 상호 확장 독서 앱이라고 할 수 있다. 방식은 파페고 앱을 다운로드 해서 파페고 서비스와 제휴한 종이책을 구매한다. 종이책에서 최근 읽은 페이지를 파페고 앱으로 촬영하면 그 부분부터 최대 25% 분량까지 전자책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전자책에 표시된 종이책 페이지를 찾아 다시 종이책을 읽을 수 있다. 종이책을 구매하면 일부를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 개념이다.

출판사 측이 파페고 측에 권당 수수료를 지불한다. 이 앱은 기본적으로 종이책 판매 촉진을 위한 홍보 마케팅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이용 분량 제한이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일부이나마 전자책을 통한 새롭고 편리한 독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종이책을 손에 들고 읽기 어려운 장소나 상황에 놓였을 때 전자책으로 읽다가, 다시 장소 여건이 종이책 독서에 적합하게 되었을 때 종이책을 펼쳐들 수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 측면의 독서 체험을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자책을 출시하기 어려운 형편이나 상황의 출판사, 작가 입장에서는 이 서비스를 통해 전자책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은 물론, 아날로그 감수성에 익숙한 독자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독자 모두에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감수성의 부활, 컬러링북과 필사 책

이상 세 가지 사례는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둔 책의 확장 또는 융합이지만, 아날로그 감수성에 바탕을 둔 책의 확장 사례도 있다. 바로 컬러링북과 필사 책이다. 특히 2015년에 이 두 분야는 큰 인기와 화제를 모으며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2015년 당시 관련 기사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4년 하반기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클, 2014)이 출간되면서 시작된 컬러링북 열풍이 여전하다. 인터파크 도서가 올해 1~5월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관련 카테고리 도서 판매량이 426%, 컬러링북 출간 종수가 1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컬러링북 열풍에 힘입어 색연필 및 사인펜 48%, 도화지 34%, 크레파스 37% 등 연관 문구류 판매량 또한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상승했다.”(<독서신문> 2015.7.1.)

손글씨 책, 이른바 필사(筆寫) 책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역시 2015년 하반기의 관련 기사 하나를 살펴보자. “교보문고에 따르면 손글씨 책 출간 총수는 2010년 20종, 2011년 19종, 2012년 21종, 2013년 29종, 2014년 36종, 2015년 46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작년부터 컬러링북이 뜨면서 하반기에 캘리그라피 위주로 손글씨 책도 함께 떴다’며 ‘2010년부터 해마다 10% 이상 상승률을 보이던 것이 2014년에는 2.4배 가까운 판매 신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뉴시스> 2015.9.5.)

노트 또는 스케치북과 책의 융합, 또는 책이 노트 또는 스케치북으로 확장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 확장이 각광받는가? 많은 이들이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고 필사 책에 글씨를 적는 동안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느낀다. 디지털 기기와 매체에 둘러싸여 지내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아날로그 감수성을 누리는 즐거움을 찾는다. 속도와 성과 최우선주의 사회에서 느리게 즐기면서, 성과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족을 누릴 수 있다. 박수밀의 『고전필사』(토트, 2015)에 대한 한 인터넷서점의 독자평을 보면 이렇다. “다양한 이미지와 훌륭한 격언들을 통해 책을 단지 읽는 수단이 아닌, 고전 필사를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책인 것 같네요.” ‘단지 읽는 수단이 아닌’이라는 독자의 말이 필사 책과 컬러링북의 성격을 잘 요약해준다.

사진 4 _ 『비밀의 정원』(클) 표지


책의 물질적 본성을 극대화한 종이접기 책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책의 아날로그적 물질성을 가장 극대화한 책은 바로 종이접기 책이다. 그 자체로 ‘책은 곧 종이’라는 엄연한 사실, 오래된 사실을 증언하는 책이라고도 하겠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출판사는 1972년 설립된 종이나라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처음 출판 사업을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1,000권 이상 종이접기 책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증강현실 컬러링 책까지 더욱 다양한 분야 책을 선보이고 있다. 1989년 사단법인 한국종이접기협회를 창립했고 종이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98년에는 서울 장충동 종이나라 빌딩에 종이나라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하였다. 해마다 ‘대한민국 종이접기‧종이문화 컨벤션’을 개최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단순한 출판사에서 더 나아가 종이 콘텐츠 기업이 된 셈이다.

종이접기는 손으로 하는 정교한 활동이다. 책읽기는 기본적으로 시각을 통한 활동이지만 물질성을 지닌 책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책장을 넘기고 책장을 접기도 한다. 종이접기 책은 접는 활동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는 ‘종이 그 자체를 읽는 책’이라고도 하겠다. 책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종이책의 물질적 본성으로 깊이 파고든 경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5 _ 『김영만 종이접기놀이 100』(종이나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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