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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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적 미스터리 같은 독자 펀드에 관하여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지금은 폐간된 어느 영화 잡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 예전의 일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사회를 마치고 나온 어느 영화 평론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끝내주는군. 정말 대단한 영화야, 그런데 뭐가 대단한지…… 설명하기가 힘드네?” 간혹 그런 책과 마주할 때가 있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은. 남이 만든 책 중에는 천명관의 『고래』(문학동네, 2004)가 그랬고, 내가 만든 책 중에는 교고쿠 나츠히코(京極夏彦)의 『엿보는 고헤이지』(북스피어, 2013)가 그랬다.

이야기 내내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다는 듯한 포즈로 별의별 해괴한 일들과 초자연적인 현상들, 요괴들 그리고 환영들을 끝도 없이 등장시키며, 대관절 이 얘기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저러나, 하는 의혹과 기대의 도가니탕으로 독자들을 몰아넣은 뒤, “원래 이 세상에는 있어야 할 것만 존재하고,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는 거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상식이니 경험이니 하는 것의 범주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상식에 벗어난 일이나 경험한 적이 없는 사건을 만나면 모두 입을 모아 저것 참 이상하다는 둥, 그것 참 기이하다는 둥 하면서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지. 자신들의 내력도 성립 과정도 생각한 적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나?”라는 자못 당연한 얘기를 지극히 당연하다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으며, 환상특급적 결말을 기대하던 독자들에게 심한 쪽팔림과 당황스러움을 기습적으로 안기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이야말로, 지금껏 어떠한 작가도 보여주지 못한 미스터리, 이른바 괴력난신(怪力亂神)적 미스터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꺼냈느냐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교고쿠의 괴력난신적 미스터리와 분위기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기옥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2012년에 5,000만 원을 모은 적이 있다. 이른바 독자 펀드인데 당시까지는 출판계에서 전무한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모집은 펀딩 사이트가 아니라 오로지 북스피어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졌고 자금이 모인 기간은 대략 열흘 남짓이었다.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목표한 금액이 다 모이면 즐겁고, 다 모이지 못하면 쪽팔리겠지 하는 정도로만 예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모집을 시작하기 전과 후는 마음가짐이 확연히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상당히 근사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고 마케팅 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얼마간은 타성에 젖어서 하던 일들을 대충 할 수 없었다고 할까. 독자들이 모아준 돈이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독자 펀드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그 돈이 왜 모였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사회적 혹은 출판문화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독자들의 힘이라 여기며 퉁치고 넘어갈 뿐이다. 다만 펀드가 조성되기까지의 과정이라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여전히 궁금해하는 형제자매님들이 있는 듯하니 거기까지만 얘기해볼까 한다.

언젠가 한 대형 출판사가 펴낸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소설의 판매 부수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어디라고 명시하지는 않겠다. 당신도 어디겠구나 짐작하지 말아달라. 아무튼 그 출판사에서 펴낸 미야베 미유키 책의 판매 부수는 경이적이어서 북스피어가 펴낸 미야베 미유키의 20여 편 판매량을 탈탈 털어 찌꺼기까지 싹싹 긁어모아도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해당 출판사에서 펴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걸작이다. 그런 만큼 판매 면에서 그 정도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데 또 내가 느끼기에 북스피어에서 펴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에도 그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작품이 있다. 그런데 왜 판매 부수가, 얼마간 다른 정도가 아니라 이다지도 현격하게 차이를 보인단 말인가.

출판사 규모의 문제인가? 규모가 다르니 각각의 작품에 투입된 마케팅 비용이 다르고, 그 결과가 판매 부수의 차이로 이어진 건가? 그렇다면 만약 나에게 해당 출판사가 사용한 만큼의 마케팅 자금이 있다면 북스피어가 펴내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그 출판사만큼 팔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오랫동안.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다. 팔 수 있겠다고. 물론 출판 마케팅이라는 게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 비례하지 않고, 자금 외에도 변수는 많다. 무엇보다 출판사의 역량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은 오랜 세월 내가 북스피어의 독자들과 쌓아온 신뢰감, 혹은 연대감에서 기인한 듯하다. 하지만 해당 출판사만큼 마케팅을 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북스피어의 여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그래서 독자 펀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목표는 두 달 동안 5,000만 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원기옥 이벤트’ 얘기를 꺼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5,000만 원이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네.” “강풀 작가의 『26년』(재미주의, 2012)이라는 만화처럼 무슨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독자들이 왜 북스피어에 돈을 모아주겠어?” 지당한 얘기다. 나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독자들이 선호하는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는 것과, 나오지도 않은 책을 두고 ‘투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북스피어가 책을 파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세이초 월드’는, 한 명의 걸출한 작가를 두 개의 출판사가 공동으로 프로모션하면 어떨까 하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판형과 디자인을 통일하여 책을 제작한 후에 마케팅에서 연대하니 뉴스가 되었고 결국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다. 만약 북스피어가 ‘세이초 월드’를 단독으로 진행했다면 그렇게까지 팔지 못했고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의 후속작도 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독자들과의 연대도 실험해보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의 독자들은 어떤 독자들인가. 마감이 닥쳐서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아마도 굶지 말고 일하라는 의미로) 라면을 박스째 보내주고, 매년 이런저런 기념일(동지, 크리스마스, 창립일, 심지어 대표 생일)을 챙겨주고, 직접 수확한 작물이며 북스피어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 새겨진 십자수까지 보내주는 독자들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번에는 새로 나오는 책에 쓸 광고비가 필요합니다”라고 얘기했을 때 과연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렇게 성원해줬으면 됐지 뭘 또 투자하라는 건가, 완전 나쁜 새끼네’라고 짜증을 낼까, 아님 ‘아아, 쟤네가 또 뭔가 일을 벌이려나보다’ 하고 재미있게 여겨줄까. 5,000만 원이 모이고 안 모이고는 나중 문제였다.

모이면 좋고, 모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시도 자체로 재미있고 의미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공지 글을 올렸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대략 2,000만 원 정도 모이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결과일 거라 여겼다. ‘원기옥 이벤트’의 대상은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북스피어, 2012)라는 작품이었지만 당시에는 제목도 미정, 표지도 미정, 내용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묻지마 투자’다. 하지만 북스피어가 그동안 펴낸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라면 그다지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벤트가 시작되었고 매일매일 상황판을 업데이트하며 얼마나 모였는지 북스피어 블로그에 공개했다. 그리하여 대관절 어떤 결과가 도래했는가.

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돈이 열흘 만에 5,000만 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게다가 투자한 독자들이 스스로 마케터가 되어 출판사에서나 할 법한 홍보를, 즉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자비를 들여 책을 경품으로 거는 희한하고도 기이하고도 상당히 바람직하다 사료되는 행각을 벌였다는 것은 꼭 기록해두고 싶다. 그 돈으로 나는 그동안 자금이 부족하여 해보지 못했던 ‘독자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날아가 저자인 미야베 미유키를 떼거리로 인터뷰하는 광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낭독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화차』를 영화로 만든) 변영주 감독을 섭외하여 광고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짓거리를 대범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사진 1 _ 독자 펀드 도서에 사인하는 미야베 미유키(필자 제공)

이후의 상황과 이듬해에 8,000만 원을 모았던 두 번째 ‘원기옥 이벤트’의 결과에 대해서는 <11일 만에 5,000만 원… ‘미야베 광팬’들의 펀딩>(동아일보), <마포 김 사장의 ‘독자 학대’>(조선일보), <출판시장 ‘북펀드’가 뜨는 이유>(해럴드경제), <‘마포 김 사장’이 사는 법>(중앙일보), <책 읽는 친구들아 ‘원기옥’을 모아줘>(시사인), <재밌으면 그만 아닌가요?>(한겨레)를 보는 편이 빠르겠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두 번의 독자 펀드 이후에, 관련한 대담이나 ‘소형 출판사의 발전 방향’ 어쩌고 하는 행사에 몇 번인가 불려나갔다. 그때마다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독자 펀드’라는 것은 실패하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쉽게 시도해서도 안 되고 쉽게 성공하기도 어렵다. 북스피어의 경우 오랫동안 블로그를 통해 진행해온 여러 이벤트가 바탕이 됐다. 참여한 이들도 대개는 북스피어의 잡다한 이벤트로 인연을 맺은 독자들이었다.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그들도 선뜻 지갑을 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익을 목적으로 투자했다기보다 출판사에 대해 신뢰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당시 북스피어에서 벌인 독자 펀드 ‘원기옥 이벤트’에 참여해준 형제자매님들에게 한 번 더 얘기해주고 싶다. 정말 고마웠다고. 제가 지금껏 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만들면서 출판을 해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입니다.

사진 2 _ 두 번째 원기옥 도서 이벤트(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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