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VOL 8

글자크기작게 글자크기크게

[2030이 보는 출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세대라고?

박원익, 조윤호(『공정하지 않다』 공저자) 박원익 : 고려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현재 지자체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조윤호 : 미디어오늘 기자를 거쳐 현재 리서치뷰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언론계는 물론 출판계에서도 2030들 중에, 좋은 글을 쓰는 저자를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리가 젊은 필자니까 같은 세대 글쟁이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지, 주변에서 좋은 저자를 추천해달라는 요청도 자주 듣는다. 브런치, 유튜브, 커뮤니티 등에 수많은 2030들이 있는데, 왜 저자를 찾기 힘들다고 하는 걸까.

물론 2030 작가들 중 에세이스트와 소설가들은 많다. 그러나 문학 분야 외에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있는 30대 필자가 있나? 특히 인문, 사회, 경제 분야의 저자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리를 잡은 이들은 대부분 40~50대들이다. 20~30대는 물론 40대 초반도 잘 찾기 힘들다.

전문가라는 건 어떻게 증명되나. 결국 ‘직함’에 달려 있다. 대학 교수를 비롯하여 각 분야에서 직함이라는 걸 내밀 수 있는 그럴 듯한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다보니 젊은 세대들은 특유의 ‘감(갬)성’과 ‘필체’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 그런 글을 쓰게 되니 점점 더 전문성은 떨어진다. 넓은 시야보다는 ‘튀는 글’을 쓰기 위해 좁은 시야를 강조하게 된다. 연구자들을 만나면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거시적인 안목이 없다고들 말한다. 악순환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 저자들 중에도 무언가 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고민이다.

 

우리 세대들은 책을 어떻게 대하나

젊은 세대에서 좋은 저자가 없다면, 그건 그 세대의 독자가 줄어서일 수도 있다. 요즘 20대들은 책을 안 본다는 말은 우리도 지겹게 듣는다. 30대가 많이 읽는지도 잘 모르겠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문학의 대가들의 주요 작품도 모르면서 문화부 기자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대학에서는 요즘 대학원생들은 기본적인 인문 사회 분야의 고전도 안 읽고 대학원에 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른바 ‘레퍼런스’가 되는 책도 안 본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출판과 책이 가졌던 권위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명문대 대학생조차 과거의 대학생보다 엘리트 의식이 상대적으로 희박하다는 점에 주목하자. 대학진학률 자체가 높아졌고 인적자본의 축적 수준도 상향평준화됐을 뿐만 아니라 명문대생이든 아니든 공통적으로 사회 진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지적 특권에 대한 권위가 약화되었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가 그렇다. 과거 대학에서 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인문교양 독서에는 ‘엘리트 의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2030들은 특권적 교양을 소유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양적으로도 좁아진 인문사회 독서시장 내에서 2030 내부의 독서 양극화도 일어났다.

그러면 과거의 레퍼런스는 그렇다 치고 이들 세대를 사로잡을 새로운 담론이나 지적 흐름이 출판을 통해 등장하고 있는가 물어보자. 그런 윗세대 저자들의 책을 본 기억이 희미하다. 결국 2030세대가 독서와 거리가 멀어졌다기보다는 인문사회 담론의 공급자들이 이들의 수요에서 멀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또 하나, 2030들은 유튜브, 넷플릭스, 웹툰, SNS 뉴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한다. 거기에서 관심사가 생기면, 그 관심사에 대한 지적 욕구를 찾기 위해 2차적으로 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즉, 이들에게 책은 그 자체로 ‘풍덩 빠져서 헤엄치고 싶은 즐거운 호수’가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수영하는 법’이 필요할 때 집게 되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지 않는 2030들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은 너무 간단하다. 결국 각박한 경쟁에 지친 다수의 젊은 세대가 집어 드는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는 나를 지금 당장 위무해주는 감성 충만한 책이거나 서브컬쳐(subculture) 서적이다. 그러니 이 세대의 독서가 줄어드는 것을 2030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 하락해서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세대들은 독서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 필요성부터 잘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 저자로서의 2030보다 출판인으로의 2030들의 역할에 대해

그럼에도 우리는 책의 필자가 되었다. 그것도 잘 안 팔린다는 인문, 정치, 사회 분야의 저자다. 우리는 별종일까? 히키코모리일까? 우선은 활자화된 형태의 담론에 대한 집착 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세대 내에서는 일종의 별종이라 볼 수 있긴 하겠다. 하지만 활자화된 담론을 내놓는 것은 어느 시대나 원래 별종들이 하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히키코모리는 아닌 듯하다. 여러 번 단행본을 내면서도, 최근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출판이든 유튜브 방송이든 고도의 사회적인 협업 과정이기 때문에 히키코모리 성향을 갖고 있으면, 저자로서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공저자와 엮여서 출판을 진행하는 과정을 겪어보니 새삼 여러 사람들과의 호흡이 중요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냈으니 같은 세대의 에디터들을 만나봤다. 비슷한 또래의 필자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이 만난 에디터들이나 출판사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만나 본 2030 출판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세대의 공통점은 발견하려는 시도가 과연 유용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여러 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은 에디터는 우선 저자가 갖고 있는 욕망을 공감하는 동시에 그러한 욕망의 자기객관화를 도와주는 어려운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에디터들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하나는 자신의 관심사와 지적 욕구를 책으로 풀어내는 에디터,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의 관심사와 자신의 관심사를 어떻게든 연결시켜 책으로 풀어내는 에디터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중 후자의 에디터들은 다소 활자화된 형태의 담론에 대한 수집욕을 가진 오타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느 성향의 에디터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만약 책이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한다면, 책을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는 에디터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책의 생산자는 사실 저자가 아니라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30 세대의 저자들이야말로 좋은 출판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030들이 책의 저자를 꿈꾼다면 그 이유는 뭘까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서, 우리는 유튜브를 할 수도 있고, 온라인에서 글 쓰는 일에 만족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단행본 필자가 되려고 했던 걸까. 책은 SNS 공간에서 과감하게 내지르는 실험적인 글과 달리, 세 번 네 번 다시 숙고하면서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온건’해지고 ‘보수적’이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단점이 있는 반면 글의 논리적 구성과 근거를 더 고민하게 되다 보니 내용이 더 알차진다는 장점을 스스로도 분명하게 느낀다.

아무리 가벼운 내용을 다뤄도, 어쨌든 단행본 출판은 양복을 빼입고 면접을 보는 느낌이다. 면전에서 진지하게 상대를 설득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내가 보기 싫은 사람을 블락하거나 차단할 수 없는, 실제 현실 세계에서 진검승부를 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호흡이 길다는 게 단행본의 가장 매력이다. 어떤 사람에게 10분 동안 내 말을 듣게 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한 시간 동안 내 말을 듣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길수록 그 일은 어려워진다. 단행본은 그런 매력을 가진 글쓰기다.

또한 우리에게 책이란 마지막 남은 권위 있는 미디어다.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콘텐츠를 재미있게 보지만 그 콘텐츠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이제는 언론사의 기사도 그렇다. 예전에는 논쟁을 하거나 주장을 할 때 신문기사를 근거로 많이 내세웠는데, 요새는 그런 논쟁을 하면 “신문에 나온 걸 믿어?”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책을 근거로 들면 그나마 믿고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단행본의 필자가 된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이 책에 나온 주장을 근거로 논쟁을 벌일 만한’ 말을 하는 글쟁이가 된다는 의미다.

만약 ‘책도 어차피 네 생각에 불과하잖아’, ‘거기 나온 정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 ‘자기 맘대로 해석하잖아’라는 이야기를 듣는 시대가 온면, 그나마 지금 단행본 출판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매력도 떨어질 것이다. 그건 저자의 책임만은 아니다. 출판사의 담당 에디터는 신문사의 데스크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저자로서 많이 느낀다. 그래서 출판에서 ‘객관화’라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들은 자기객관화가 잘 안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낸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의 관종(관심종자)의 성격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2030들을 출판 콘텐츠의 저자로 등장시킬 유인요소는 오히려 크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오늘날의 2030들은 “네가 뭔데 책을 내?”라는 질문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책을 내지”라고 말할 수 있는 별종들이다. 점점 그런 별종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별종들의 관종 끼가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더 많은 동세대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는 좀 다른 문제이다.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세대가 갖고 있는 낮은 전문성이 대중성이라는 장점이 되거나, 좁은 취향이 개성화라는 매력이 되어, 독서 인구를 늘이는 데 이바지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본다. 반대의 경우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어쨌든 책은 많이 안 읽지만,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는 10명 중의 9명이 아니라, 책을 쓰는 10명 중의 1명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느낀다. 그런 점에서 동년배들의 독자들을 만나보면, 과거 독자들이 저자에게 가졌던 ‘선망과 존경’ 같은 건 약해진 듯하다. 특히 동년배 필자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인 ‘너’가 독자인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미리 말해두었거나, 내가 쓴 것보다 더 잘 썼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를 잘 대변해주는 동년배 필자라면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필자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내가 그 자리를 맡겠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2030세대에게는 콘텐츠를 구매해서 소비한다는 개념보다는 나 자신이 콘텐츠를 후원한다는 주인의식, 권리의식이 더 뚜렷하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유튜브나 트위치를 후원하듯이 인문사회 담론에 대한 그런 방식의 후원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까가 저자로서 하는 고민이다. 왜냐하면 저자이기 전에 독자로서 우리도 과거에 책을 읽는 기쁨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것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순수한 기쁨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기쁨이 덜하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에서 유행하는 담론의 정형화된 구조와 패턴을 어느 순간 알게 되면 ‘어차피 그게 그거’라는 느낌이 들며 심드렁해진다. 믿기 어려운 일일 수 있겠으나 2030세대 상당수는 인문사회 분야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강고한 담합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4050들이 새 책을 내면 ‘안 봐도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간혹 참신한 발상을 하는 저자 분들을 마주치게 되면 그럴 때는 뛸 듯이 기쁘다. 일단 우리부터 그런 저자인지를 생각해본다. 쓰다 보니 고민상담이 되었다.

facebook twitter print top

커버집중기획

관련 키워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