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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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출판과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 같은 소리하고 있네

김선욱(다산북스 마케팅팀 매니저)

1.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나는 ‘설명충’이다. 회의 시간, 나의 얄팍한 아이디어에도 사려 깊은 동료들이 성심껏 고개를 끄덕이면, 맞장구에 흥이 올라 눈치도 없이 불필요한 부가 설명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속이 쓰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키면 동료들을 설득(했다고 착각)해 뿌듯하던 기분이 선명하니까.

나는 <소행성책방>이라는 온라인 매체를 운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 광고를 의뢰받고 콘텐츠를 만들어 포털과 SNS에 발행한다. 출판사 마케터, 광고기획자 출신의 콘텐츠 에디터 4인으로 구성된 소행성책방은 지난해 운영을 시작해 70여 개 출판사와 협업을 진행했다. 콘텐츠를 통해 다수의 사람이 책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설득력 있는 기획을 위한 회의가 일과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매일 머리를 맞대는 직장동료조차 설득이 쉽지 않다. 그러니 출판 마케터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특정 책으로 쏠리게 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심지어 그 책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일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콘텐츠의 전달과 소비 방식이 완전히 바뀐 지금, ‘마케팅’과 ‘온라인 마케팅’은 동일어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출판 마케터들은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찾아 카드형 콘텐츠를 의뢰하고 북튜버를 찾아 책 추천을 부탁한다. 이 모든 작업의 핵심은 책의 발견 가능성을 높이고 독자를 설득하는 것, 두 글자로 ‘광고’다.(역시 설명충이 맞다.)

되짚어보자. 어떤 책이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배본 일정에 맞춰 서점으로 달려가는 독자를 본 적이 있나? 있다면 당장 로또 판매점으로 향하길 바란다. 꿈에서 용을 본 것만큼이나 귀한 경험이니. 독자는 무슨 책이 언제 출간됐는지 모른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관심이 없다. 도서 분야에 설득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쉽게도 출판사의 선택 폭은 넓지 않다. 책을 다루는 인플루언서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판매 효과가 검증된 채널은 더 적기 때문에 설득력이 검증된 인플루언서는 이미 몇 개월 치의 광고를 미리 의뢰받아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출판사들로서는 광고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얼마 전 모 출판사의 마케터를 만났다. 이렇게 말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출간을 앞둔 책을 여러 인플루언서들에게 보냈지만 갖가지 이유로 거절당했고, 원하는 책 노출 일정을 잡기도 어렵다고, 꼭 광고를 맡아달라며 그가 한 말이었다. 이쪽도 살펴봐야 할 책이 산처럼 쌓여 있는 상황이라 멋쩍게 웃었는데, 그가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팀장님...저희 책 간택 좀 해주세요.”

‘간택’이라니. 뒤바뀐 갑을관계에 여러 복잡한 마음이 생겼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광고를 맡을 인플루언서는 마땅치 않은 이 아이러니한 불균형이 우선 씁쓸했고, 혹시 나도 책을 다루는 SNS 채널이 몇 개 없다는 이유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잡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독자가 느끼고 있을 염증이었다. 거기서 거기인 인플루언서가 대동소이한 포맷으로 비슷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요즘이다. 특히 책 광고는 누가 만들어도 변별성을 찾기가 어렵다. 현재 활동 중인 인플루언서들은 책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일의 본질을 잘 해내고 있는 걸까?

2.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말이지만, 출판계는 느리다. 10년 전 관료 사회조차 뉴미디어에 혈안이 되어 수억 원의 예산으로 정부 부처마다 SNS 운영대행사를 모집하던 시기에도 주요 출판사들은 변변한 공식 SNS 계정조차 없었다. 5년 전 유튜브가 압도적인 플랫폼이라는 것을 깨달은 타 업계가 기민하게 미디어 전략을 세우고 있을 때, 출판계는 그제야 페이스북 관리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유튜브 운영이 시작된 지금도 뉴미디어는 신간을 광고하는 플랫폼 정도로 활용된다. 이제야 정해진 공식처럼 책이 나오면 카드형 콘텐츠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지만 이마저 신속하지 못해 원하지도 않는 일정에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를 진행한다.

콘텐츠 대응만 더딘 것이 아니다. A출판사 대표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온라인 홍보 맡을 ‘젊은 애’를 하나 찾고 있는데, 적당한 애 없어요?” 이 질문은 새로운 플랫폼의 몰이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뉴미디어 담당자를 SNS에 재미있는 글이나 끄적이는 비전문가로 취급하는 인식은 당연히 사내 처우와 맞물려 유독 높은 이직률로 이어진다. 자사 채널의 브랜딩 효과에 민감한 다른 업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책은 구매자에게 ‘독서’라는 적극적인 행동까지 요구한다. 다른 어떤 제품보다 구매 설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면밀한 설득 작업의 담당자로 ‘젊은 애’를 찾는 출판사와 그런 물심양면 ‘애 취급’을 못 견딘 퇴사자. 이 기막힌 미스 매칭은 조금 심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클루지』(갤리온)와 『정리하는 뇌』(와이즈베리)의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을 보면서 이 어긋남을 다시 생각했다. 하느님도 살리기 어렵다는 구간을 마케터도 아니고 홍보 담당자도 아닌, 당시 구독자 3만 명을 보유한 한 유튜버가 살려냈기 때문이다.

'라이프해커 자청'의 유튜브 캡쳐 이미지

‘라이프해커 자청(자수성가한 청년의 줄임말)’이라는 이름의 그 유튜버는 자신이 월 수천만 원의 수익을 내는 사업가라고 소개하며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부자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책을 추천했다. 45만 조회를 기록한 그의 영상은 마케터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내려오던 ‘구간의 부활’을 눈앞에 현실로 펼쳐냈다.

“내가 읽어보니 정말 인생이 바뀌더라.”는 낯선 청년의 진심이 기적처럼 사람들을 서점으로 향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전설의 무림고수처럼 그는 몇 종의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더니, 홀연히 유튜브에서 자취를 감췄다.

반짝 오른 판매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건’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독자를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한 말로 설득하기 위해 종일 책과 씨름하는 나는, 그 모든 일을 간단히(?) 해낸 전설의 고수를 보면서 다시 복잡해졌다.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싶으면서도, 어쩌면...어쩌면 이 사건은 ‘출판사 젊은 애’들의 돌파구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 때문에.

3.

유튜브셀러의 효과를 절감한 마케터들이 ‘마이크로인플루언서’를 주목하고 있다. 굳이 ‘마이크로’라는 말이 필요한 이유는, 인기도가 덜하지만 영향력이 확실한 인플루언서를 구분하기 위함이지만 어떤 인플루언서도 끝까지 ‘마이크로’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구분은 현재 상태에 이름표를 붙인 것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구간을 살려낸 ‘라이프해커 자청’은 북튜버도 아니고 구독자 규모를 감안하면 출판사가 찾는 유형의 인플루언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성공한 젊은 사업가’라는 자아를 활용해 삶의 노하우를 영상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도움받은 책을 언급했을 뿐이다.

여기서 마케터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 사건을 보고도 단발성 책 광고를 맡을 인플루언서만 찾는 현상이, ‘제2의 자청’을 찾으려 혈안이거나 <김미경TV>의 파급력을 막연히 기대하는 심리가, 영향력을 책 광고에 이용만 하고 직접 가지려 들지는 않는 출판사들이,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의문 말이다.

유튜브의 CBO 로버트 킨슬은 그의 플랫폼이 가져 온 가장 의미 있는 변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유튜브는 유명인의 개념과 자격을 바꿔놓았으며,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콘텐츠를 시청할 기회를 만들었다.”

제대로 준비해서 공들여 진행한 책 광고는 결국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휘발되는 마당에 뜬금없이 구간이 베스트셀러로 치고 올라온 사건은 킨슬의 말을 뒷받침해준다. 분명 ‘유명인’의 개념과 자격은 바뀌었고 그 사실을 마케터보다 빨리 알아챈 사람들이 바로 지금 책을 간택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다.

마케터는 유명한 인플루언서를 찾지만, 독자는 관심과 흥미가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 단순히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광고 효과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뉴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 연결하고, 그 모든 과정이 터치 한 번이면 가능한데 지금의 인플루언서가 영향력을 독점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몰랐던 ‘자청’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첫 영상을 업로드하고, 스스로 동기부여 전문가로 포지션을 잡고,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해 구간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이 모든 일은 3개월 사이에 벌어졌다. 이 바닥에서 ‘인플루언서’나 ‘마이크로인플루언서’라는 명찰은 필요 없다.

4.

요즘 누구나 입에 달고 다니는 유튜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유튜브는 광고 플랫폼이 아니다. 책 광고를 보기 위해 구독 버튼을 터치할 사람은 없다. ‘책 광고’와 ‘책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다. 당연히 영향력은 후자에 생기고 출판사가 이 영향력을 갖기 위해 온라인 홍보 담당자는 최적임자다.

그렇다면 출판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 출판계는 이들이 스스로 채널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이들은 새로운 매체 운영에 능숙하고, 퍼스널 브랜딩을 필요로 하며, 크리에이터의 근육을 이미 갖고 있다. 출판사가 이들을 인플루언서로 육성하는 것은 ‘투자’를 넘어 ‘생존 전략’에 가깝다.

관심이 있는 업계 종사자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유튜브에는 이미 꽤 많은 전·현직 출판사 직원의 채널이 있다. 대부분 20-30대인 이 유튜버들은 편집자 혹은 마케터로 일한 경험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날 것 그대로인 출판사 업무와 조직 문화, 직원들의 연봉과 독자들이 모르는 작가의 흥미로운 뒷이야기에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이 경험담을 계속, 더 자주 보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와 미래의 출판인, 예비저자, 업계의 동료들에게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채널들의 구독자 규모는 ‘마이크로’하기는 커녕, 마케터가 찾는 인플루언서에 비하면 ‘나노’한 수준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카메라 초점과 조악한 편집 영상에도 불구하고, 출판사가 유통시키는 어떤 북트레일러나 책 광고보다 높은 반응을 얻는다. 구독자들은 추천받은 책이 좋았다며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고, 구독자의 의견을 반영한 책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함께 독서모임을 가지며, 심지어는 유튜브에서 구독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어 출간하기도 한다.

이런 유튜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출판사 일부 직원들의 끼와 재능에 업힌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찾던 ‘젊은 애’들의 전문가적 면모가 유튜브 판에서 빛을 내고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뉴미디어 운영에 능숙한 이 전문가들은 취향을 공유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순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미 ‘도서 분야’ 너머를 보고 있다. 영화와 게임 리뷰는 물론, 공방이나 카페, 분위기 좋은 주점을 찾아내 소비하라는 설득에 성공한다.

출판계 종사자가 반드시 북튜버로 활동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이들은 이성의 심리에 빠삭해 연애 채널을 운영 중이거나, 김미경TV처럼 동기부여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출판사는 심리, 인문에서부터 자기계발과 경제경영에 이르기까지 가장 수준 높은 텍스트들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내부 전문가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박대하고 밖에서 인플루언서를 찾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출판이 주목해야 할 뉴미디어의 방향은 MCN(Multi Channel Network) 모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의 콘텐츠를 유통하고, 창작을 지원하고, 수익 창출을 돕는 일. 영향력을 ‘찾을 것’이 아니라 ‘키워서 가지기’를 노리는 것이다. 책 팔기도 바쁜데 언제 그런 투자를 하냐고? 아...역시 출판계는 느리고, 나는 설명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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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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