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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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것'보다 '핫한 곳'을 찾는다 - 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김정구(다음소프트 연구원)

‘핫했던 여름’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우리는 더운 날이면 ‘오늘 엄청 핫하네’라는 표현을 자연스레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해 입소문을 탄 아이템이나 브랜드를 두고도 ‘핫하다’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의 상당수가 소셜 미디어에서 유래하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두고 한글 파괴(혹은 언어 파괴)라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현상에 제동을 걸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누군가는 주기적으로 이런 신조어나 ‘외계어’에 대한 해석과 사용 예시를 만들고 공유하기까지 한다. 이런 언어를 알아야 ‘핵인싸’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외계어에 능통한 이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시간을 들여 공부하기도 한다.

형용사 ‘Hot’과 동사 ‘하다’가 만나 탄생한 ‘핫하다’라는 표현은 2014년에 발생한 소셜 미디어 3차 전성시대(라고 쓰고 인스타그램 전성시대라고 부른다)의 개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 빈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트위터의 뒤를 이어 소셜 미디어 2차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페이스북이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적 담론을 이야기하기 적합한 플랫폼으로 인지되고 이용되었다면, 이보다 더 개방적인 플랫폼이자 더욱 개인에 특화된 채널인 인스타그램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시기가 바로 2014년이다.

(※해당 플랫폼에 대한 관심(언급) 측면에서도 2014년은 페이스북에 대한 관심이 꺾이기 시작한 해이자, 현재 대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한 해였다는 점에서 사회학적으로나 개인 미디어 이용의 역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순간이다). ‘핫하다’는 소셜 미디어 지각 변동이 일어난 시점에 (사용 빈도 증가와 함께) 개인적인 일상 표현의 범주로 들어왔다.

[표1. 핫하다 - 언급량 추이]

 

핫한 것에서 핫한 곳으로

‘핫하다’라는 표현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사용된 것과 함께 의미 변화도 감지되는데 그 시점 역시 2014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기존의 ‘핫하다’라는 표현이 대상(연예인, 아이돌)을 수식/표현하거나, 혹은 아이템이나 브랜드와 같은 물건을 지칭할 때 사용되던 표현이었다면, 이제는 카페나 맛집과 같은 장소를 수식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표2. 핫하다 - 연관어 Top3 변화]

비단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핫하다=장소’로 의미 변화가 나타난 것을 알고 있다. 유명 래퍼 지코(Zico)가 “하태핫태(핫 해 핫 해)”라고 외치던 모 워터파크의 광고가 등장해 하나의 유행어로 쓰인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당시 광고기획사에서 이런 현상을 파악하고 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광고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와 그것을 받아들인 우리의 답변은 분명하다. ‘핫한 곳!’.

 

핫플레이스, 우리를 공간으로 이끄는 단어

언제부터 핫플레이스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을까? 우문일 수 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핫하다’가 ‘핫한 곳’과 동의어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2014년)부터이며, 핫플레이스에 대한 관심은 ‘핫하다’보다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표3. 핫플레이스 - 언급량 추이]

페북 스타들이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고, 인스타그램 전성시대와 함께 새로 등장한 인플루언서들(인스타 셀럽)은 누구보다 빠르게 ‘핫플레이스’를 선점했다. 그들 자신이 여기가 ‘핫플레이스’라고 선언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흔적을 남긴 장소는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그곳을 찾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핫플레이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곳은 우리를 그곳(공간)으로 이끄는 힘을 갖게 된다.

“#핫플레이스 해시태그로 표현된 누군가가 예쁘고 멋지게 찍어 올린 한 컷의 사진을 보면 나도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핫플레이스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은 나도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하고 즐겨찾기를 해 두게 된다”

 

살아 움직이는 핫플레이스

마치 동네들끼리 살아남아서 해당 타이틀을 달기 위해 경쟁하듯 핫플레이스의 타이틀을 단 동네는 매년, 혹은 분기마다 순위 바뀜이 일어난다. 여전히 핫플 최상단에 위치한 동네는 이태원, 청담, 홍대, 한남동 등이지만, 뜨는 핫플은 익선동, 종로, 잠실, 마포, 을지로, 효자동이며, 지는 핫플은 성수동, 경리단길, 망원동, 서촌 등의 동네다.

뜨는 핫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빈티지한 감성을 가진 장소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중장년층, 혹은 그 윗세대가 기억하는 을지로는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직장 동료나 친구와 가벼운 지갑 사정을 고려해 간단히 노가리에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핫플레이스로 을지로를 찾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그동안 경험하기 힘들었던 빈티지한 감성과 분위기를 지닌 곳이기에 핫하거나 힙(hip)한 동네로 인식된다. 역으로 핫플레이스에 순례자들이 급격히 몰리게 되면, 그 곳은 흔한 장소, 즉 커먼 플레이스(common place)가 되기 시작하고,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따라오게 되며 서서히 핫플레이스의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다.

[표4. 핫플레이스 연관 동네/지역 변화]

‘핫하다’가 장소(지역)를 뜻하는 방향으로 의미가 변했고, 핫플레이스마저도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순위와 의미가 변하고 있다. 언젠가 을지로도 핫플레이스, 혹은 힙플레이스라는 수식어에서 멀어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은 더 핫한 장소를 물색하고 찾아가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기 전 핫플레이스라고 명명된 장소 중 한두 군데 정도는 (굳이)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인싸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곳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곳이 전달하는 분위기가 당신의 집 인테리어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혹은 끼치게 될지) 등등을 두고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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