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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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좋은 작품의 국적을 묻지 않는다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일본통신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를 전공. 2007년 출판사 쿠온을 설립. 사무소 이전에 따라 2015년 7월 7일 칸다 진보초에 한국어 원서 책, 한국 관련 책 전문 북카페 ‘CHEKCCORI(책거리)’를 오픈했다. 현재 쿠온출판사를 통해 한국 문화와 문학 관련 도서들을 출판하며, 북카페에서는 연 120회 이상의 한국 문화 이벤트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계간지 《文藝(문예)》 가을호가 3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모양이다. 당연히 이곳 일본에서도 화제다. 이번 가을호 특집은 ‘한국, 페미니즘, 일본’이었다. 한강, 박민규, 박솔뫼, 이랑, 조남주 씨의 신작들과 함께, 일본 작가들이 본 한국 페미니즘과 일본 페미니즘에 대한 에세이가 실렸다.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호시노 토모유키씨, 니시 카나코씨, 만화가 와타나베 페코씨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

7월 5일 가을호가 발매되자마자 서점으로 주문이 폭주했고, 구입하지 못한 독자들은 SNS를 통해 2쇄를 찍으라고 아우성쳤다. 정기간행물인 잡지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중쇄는 찍지 않는다. 잡지라는 게 스스로 기간제 상품임을 명시한 터이고, 중쇄를 했다가 되돌아 올 반품더미를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SNS상에서 보이는 독자들 성화는 실로 대단했다.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서 시작해 독자들이 이렇게 원하는데 더 찍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 아니냐는 으름장형, 차라리 전자북으로 서비스해 달라는 읍소형까지 나왔다.

필자가 운영하는 한국 전문 책방에서도 처음에 10권을 들여놓았는데 들어온 당일 완판이 됐다. 그래서 바로 추가 주문을 했다. 많은 손님들은 한국 전문 서점인 우리 책방에는 있을 거 아니냐고 책방 문을 열기가 바쁘게 문의를 해 왔다. 출판사 영업부를 통해 긴급으로 20부를 더 들여놓았지만 역시 하루 만에 다 팔리는 신기록을 세웠다. (사실 우리는 이번에 《文藝(문예)》를 처음 들여놓은 책방이었다)

일본 전국의 여러 서점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자 결국 출판사인 카와데쇼보신샤는 중쇄를 결정했다. 이 뉴스는 SNS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중쇄마저도 다 팔리자 지금까지 문예지를 한 번도 구입한 적이 없는 독자들까지 구매 호소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책방에서도 2쇄본을 30권 받아 팔았는데, 이번에도 손에 넣지 못한 독자들이 읍소를 한 끝에 카와데쇼보신사는 급기야 3쇄마저 찍기로 했다. 이 잡지 창간 8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문예》는 1933년에 창간된 잡지로 일본 5대 문예지 중 하나다. (5대 잡지는 《新潮》(新潮社),《文學界》(文藝春秋),《群像》(講談社),《스바루(すばる)》(集英社), 《文藝》(河出書房新社)

5대 문예지들도 종종 이렇게 중쇄를 하는가

잡지가 특히 문예지가 중쇄를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연예인으로 더 알려진 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2015년 15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씨가 첫 소설 『火花』를 《文學界》(2015년 2월호)에 실었을 때 초판 4만부에 추가 1만부를 찍었다는 게 당시에 큰 화제가 됐다. (이 소설은 단행본으로 나와 300만부 가까이 팔렸다) 또 마타요시의 두 번째 작품이 2017년 《新潮》 4월호에 실렸을 때 초판 4만부를 찍었는데 주문이 폭주하여 1만부를 더 찍었다는 기사 역시 큰 화제였다.

지금까지 문예잡지의 중쇄는 연예인이 쓴 순문학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었기 때문에 나타난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예인이 쓴 소설을 실은 것도 아닌데 《文藝》가 3쇄까지 찍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점이다. 그 비밀을 다 함께 들어볼 생각으로 필자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문예》 편집자를 초대해 토크 이벤트를 열었다. 8월 1일의 일이다.

《문예》 편집자는 모두 3명인데, 이날은 타케하나 스스무(竹花進)씨가 나와 참가자들과 그 인기의 이유를 함께 풀어나갔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책을 시장에 내놓기까지, 아니 내놓고도 왜 팔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모르는 법이다. 한 사람의 작품을 실은 단행본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작품을 실은 잡지일 때는 더 그렇다. 추측해보면 역시 『82년생 김지영』의 효과가 압도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표방한 소설이고 일본에서 번역된 문학으로는 드물게 13만부나 팔린 소설로 한국문학의 욘사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한강, 박민규, 조남주 등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 이 잡지용으로 새로이 소설을 써주었다는 점, 게다가 싱어송라이터로 일본에서 착실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랑 씨가 처음으로 이 잡지에 소설을 실은 점도 주효했다고 하겠다. 이랑 씨의 소설은 ‘세계 최초로’ 이 잡지에 실렸다. (이는 출판사의 공식 멘트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한국/페미니즘/일본’이라는 특집 제목이 사람들의 흥미를 끈 게 아닐까. 마치 검색 창에 검색단어를 나열한 듯 제목을 뽑은 것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지난 여름호의 특집 제목은 ‘천황/헤이세이/문학’이었다. 인기의 비결을 또 들자면, 《문예》의 디자인이 지난 여름호부터 크게 바뀌었다. 문예지 특유의 중후함을 벗어 던지고 캐릭터를 쓰는 등 무척이나 화려해졌다. 서점 매대의 수많은 잡지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띄는 기발한 디자인이다.

《문예》 가을호(왼쪽), 《문예》 여름호(오른쪽)

또한 표지를 종이 잡지에서는 하나이지만 웹상에서는 GIF파일로 만들어 올려 움직이는 형태(이른바 ‘움짤’)로 볼 수 있게 했다. 카와데쇼보(河出書房) 문예 공식 웹사이트 (http://www.kawade.co.jp/np/bungei.html)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SNS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SNS에서 화제가 되면 아무래도 판매로 이어지는 게 크다는 걸 다들 알 것이다. 많은 정보를 웹을 통해 취하는 요즘의 독자들을 의식한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지난 6월에 필자는 일본 출판관계자 10여 명과 한국 출판사들을 방문해 최신 트렌드와 각사의 주력 상품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일본의 독자들은 40대, 50대, 60대로 점점 고령화가 되어간다, 10대, 20대 독자들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과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출판사들은 젊은 독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 문지(문학과지성사)의 이광호 대표의 답변에 다들 무릎을 쳤는데 여기에서도 살짝 공유해본다.

문지는 두 가지 방법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먼저, 표지 디자인에 힘을 들인다. 기존의 책들도 디자인 리뉴얼을 하고 있다. 젊은 층이 책을 들춰볼 수 있게 하려면 역시 그 시작은 표지 디자인이다. 또 하나는 SNS용 콘텐츠의 개발이다. 책의 정보를 다양한 SNS를 통해 알려주는 것이 구매욕을 일으키는 관건이라고 본다고 했다.

《문예》 편집자 3명은 ‘문예’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일반 단행본도 만든다. 타케하나씨는 회사에서 한국문학을 몇 권 담당한 적이 있어 이번 특집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만든 책으로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 한강의 『흰』이 있다. 그는 이번 잡지에 실은 소설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만들어 낼 거라고 했다. 아직도 《문예》를 사지 못한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책방에서도 또 한 번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참고로 우리 책방에서 판매된 《문예》 가을호는 총 80권이었다. (단행본도 아니고 잡지, 그것도 문예지가 80권이나 팔린 것은 상당히 기적적인 일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릿터(Littor)》 창간호가 20권 정도 팔린 적은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일본 독자들은 한국문학이어서 한강을 읽거나 조남주를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강이고 조남주 작품이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자들은 이미 작가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재미있거나 작품성이 높아서 읽는 것이다. 한강, 박민규, 정세랑, 조남주, 편혜영, 권여선, 최은영, 황정은, 김연수, 이기호 등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지금 일본어로 번역 중이다. 에세이도 계약이 활발하다.

요즘 한국 출판사들이 일본 작가 작품 내기를 주저하는 것과 달리 일본 출판사들은 좋은 작품이라면,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정세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관심을 보인다. 한국의 독자들도 히가시노 게이고나 무라카미 하루키여서 읽는 것이지 일본문학이어서 읽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출판사들이 이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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